프랑스의 작가 미셸 우엘백은 1988년 발표한 소설 '소립자'에서 생명공학의 진화를 통해 인간이 새로운 존재로 대체되고 새로운 인간종이 지구를 이어받는 미래를 그렸다. 40여년 전에 이 이야기는 그저 SF적 상상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소설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상황이 아니다.
구글, 오픈AI 같은 글로벌 빅테크와 각국 정부는 인공지능(AI)의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의 삶에 AI는 어떤 역할을 하며 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불안감도 이와 함께 커져 간다. 낙관적인 시각으로 보면 AI는 생산성을 높여서 우리의 삶을 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다. 반대로 AI가 일자리를 뺏어감으로써 인류의 미래가 암담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도 있다.
실제로 AI 발전과 함께 세계 테크기업들은 IT 전문가의 고용을 줄이고 기존 전문가들을 해고하는 추세다. 과학 분야 역시 예외가 아니다. AI는 조력자를 넘어 연구의 동료로 진화하고 로봇과 결합한 무인연구실의 확산도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미래에 과학자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까.
역사를 살펴보면 신기술이 특정 직업군을 위협하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19세기 중반 사진기술의 등장은 화가들에게 오늘날의 AI와 비견될 혁명이었다. 사물과 풍경을 정확히 복제하는 사진의 등장은 특히 초상화 분야에 큰 타격을 줬고 초상화가라는 직업은 빠르게 사라졌다. '사진이 그림을 죽일 것'이라는 우려가 커져 갔다. 그러나 모든 화가가 사진의 등장을 부정적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몇몇 화가는 사진을 그림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1874년에 등장한 미술사상 가장 강력하고 혁명적 유파인 인상파는 '빛'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에드가르 드가 등 젊은 화가들은 카메라 원리를 연구하며 인간의 눈이 인식하는 감각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우리의 눈은 카메라보다 부정확하고 주관적이다. 눈은 날씨, 대기, 햇빛의 강도, 착시 등에 따라 같은 풍경을 다른 모습으로 인식한다. 인상파 화가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개개인의 시각적 경험에 집중한 그림들은 결과적으로 대상이 뚜렷하지 않고 오히려 모호하고 흐릿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미완성처럼 보이는 그림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시대는 분명 변화하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인상파는 강력한 예술 사조로 부상하며 근대미술의 전진을 이끌었다. 지금도 인상파는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이 창조한 감각적인 그림들은 결국 카메라 렌즈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1886년에 발표된 조르주 쇠라의 대작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예술과 과학의 중간지점 어디쯤에 절묘하게 자리 잡고 있다. 쇠라는 작은 원색의 점을 캔버스에 번갈아 찍어 색의 혼합이 팔레트가 아니라 우리 눈에서 이뤄지는 '점묘법'이라는 기법을 발전시켰다. 점묘법은 우리의 눈이 색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연구한 결과로 만들어진 기법이다. 이는 '신인상주의'로 이어지며 현대미술로 향하는 다리가 됐고 산업계에는 브라운관의 원리를 제공했다.
150년 전 인상파의 탄생은 카메라라는 기술발전이 화가들에게 새로운 창조의 길을 열어주는 도구가 됐음을 보여준다. 급격한 기술발전은 기존의 직업을 위협하지만 뛰어난 창조성을 가진 개인은 이 기술발전을 이용해 더욱 파격적이고 놀라운 혁신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 사례는 AI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거부한다고 미래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SF영화의 디스토피아적 불안에 잠식되기보다 인상파 화가들처럼 적극적으로 미래를 만들어나갈 길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