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자사주 의무소각과 경영권 방어

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교수
2026.03.31 02:00

지난 2월 25일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3차 상법 개정의 핵심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이다. 기업들은 기존 자사주는 1년 6개월 이내 소각해야 하고 신규로 취득한 자사주도 1년 내에 소각해야 한다. 예외적으로, 임직원 보상이나 우리사주조합 출연 또는 인수합병과 같은 사유가 있는 경우 자사주를 보유할 수 있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회사 정관에 자사주 보유 목적을 명시하고 매년 주주총회에서 '자기주식 보유 및 처분 계획' 승인을 받도록 하였다. 만약 자사주 소각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이사 개인에게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자사주 의무 소각 정책의 목적은 주주환원을 강화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자사주를 소각하게 되면 유통주식수가 감소하여 주당순이익(EPS)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높아져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 또 현 경영진이나 지배주주가 경영권 방어용으로 자사주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주주와 경영자 간 대리인비용이 감소하여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되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반면,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응할 수단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자사주가 의무 소각되면 경영진이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재무전략 및 투자계획을 수립하기 어려워지고 단기적으로 주가관리와 배당압박에 노출될 우려도 있다.

기업들의 대응 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 등 대형상장사들은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주주환원 강화라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고 있다. 반면, 일부 중견기업들은 경영권 안정을 위해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우호 세력에게 자사주를 매각하거나 맞교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 등 예외사유에 맞춰 자사주 활용 목적을 재설계하고 정관에 관련 근거를 신설하는 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을 수 있도록 주주 설득을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배당 성향을 높이는 등 보다 직접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자사주를 둘러싼 '재무·지배구조의 마법'이 사라지는 대신, 보다 투명한 주주환원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자사주 소각으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제한된 상황에서 경영권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주주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탁월한 경영실적을 바탕으로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경영진을 싫어할 주주는 별로 없다. 설사 외부투기세력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더라도 기존주주들이 경영진의 우호세력이 되어 경영권 방어가 수월해진다.

과거처럼 자사주를 쌓아두고, 필요할 때 구조개편과 우호지분 형성에 활용하는 '안 보이는 방패'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대신 연구개발 및 신사업 투자, 일관된 주주환원 정책, 이사회 독립성과 같은 지배구조 개선이 새로운 방어막이 될 것이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까다로운 제도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과 주주를 설득할 수 있는 기업만 살아남는 건강한 경쟁 환경으로의 전환이기도 하다. 자사주가 사라진 자리를, 진짜 실적과 혁신으로 채우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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