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8월 2일 하롱베이 인근에 위치한 통킹만에서 북베트남 어뢰정이 미 해군 구축함 매덕스호를 공격했다. 이틀 후 악천후 속에 미군의 레이더에 적함이 접근하는 신호가 포착되었다. 북베트남 어뢰정이 파상공격을 가하고 있다는 긴급 전문이 워싱턴에 도착했다.
이후 현장 지휘관은 레이더 오작동의 가능성이 크다며 보고를 수정했다. 하지만, 미 의회는 이를 무시하고 '통킹만 결의안'을 통과시켜 대통령에게 전쟁 수행 권한을 부여했다. 대선을 앞두고 강한 지도자 이미지가 필요했던 린든 존슨 대통령은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을 강화했다.
미국은 압도적 공군 우위를 바탕으로 롤링선더 작전을 벌였다. B-52 폭격기를 동원해 북베트남의 보급로와 산업시설에 64만 톤에 달하는 폭탄을 투하했다. 수천 대의 헬리콥터가 정글 위를 질주하며 병력을 이동시켰고 네이팜탄이 터진 숲은 불바다가 되었다.
1967년 11월 현지 미군사령관은 적이 한계에 도달했다며 터널 끝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소모전을 벌이던 1968년 1월 30일 거짓말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구정인 이날 북베트남군이 베트남 전역 100개가 넘는 도시를 기습 공격했다. 당시 수도였던 사이공 주재 미 대사관이 점거당할 뻔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사관 마당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장면을 TV로 지켜본 미국의 여론은 당황했다. 승리가 눈앞이라 주장하는 정부의 말을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웠다. 반전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유리한 전쟁 정보만 흘리며 신뢰의 갭을 만들었던 존슨 대통령의 지지도는 36%로 급락했다.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해야 했다. 미 정부는 북베트남에 제발 협상 테이블에 나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해 5월 파리에서 첫 공식 회담이 열렸다. 베트남 전쟁은 1973년 1월에야 파리 평화 협정을 통해 정식으로 종전했다. 베트남전은 한 번 시작한 전쟁은 끝내기 어렵고 국민의 신뢰를 어긴 국가는 이기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을 기점으로 골디락스를 구가하며 승승장구하던 미국 경제도 기울기 시작했다. 물가 상승률이 3%를 넘는 인플레이션 시대가 펼쳐졌다. 닉슨 대통령은 금 본위제를 포기했고 달러는 공식적으로 기축통화 지위를 내려놓아야 했다.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 양상도 초기 베트남전과 유사하다. 미국은 압도적인 공군력과 토마호크 미사일, 정보력을 바탕으로 이란 전역의 전략거점을 타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 반복해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은 지하에 전력을 온존한 채 종전협상에 좀처럼 응하지 않았고 최근엔 미군 정예기인 F-15E마저 피격당해 조종사 구출을 위한 수색작전을 치열하게 전개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장기간 진행된 베트남전의 여파는 브레튼우즈 시스템 해체에 그쳤지만 이란전이 장기화하면 달러가치 급락과 스태그플레이션 진행이란 퍼펙트스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7일(현지시간) 2주간 휴전에 합의한 두 나라가 승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시급히 종전을 선언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