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말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과학축제'에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갔다. 얼마 전 장래 희망을 경찰에서 작가로 바꾼 아이에게 과학자의 길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는 과학축제에 가면 '로봇 복싱쇼'를 볼 수 있다고 하자 눈을 반짝였다.
이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정부출연연구소가 자율주행 로봇, 우주 개발 등 최신 연구를 선보이고 카이스트가 사족 보행로봇 '라이보'를 시연했지만,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모인 이벤트는 단연 로봇 복싱쇼였다.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로봇 복싱을 보고 로봇과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까지 섰다. 그런데, 로봇을 중국 기업이 만들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았다. 이 로봇은 중국 유니트리가 제조한 G1으로 키 130cm, 무게 35kg이며 최고 시속 7.2㎞로 달릴 수 있다. G1 가격은 약 8만5000위안(약 1810만원)으로 작년에만 2000대 넘게 팔렸다.
중국 관영 중앙(CC)TV가 유니트리의 G1으로 처음 로봇격투대회를 개최한 게 작년 5월이다. 한국은 아직 중국의 1년 전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중국 기업이 만든 로봇으로 대한민국 과학축제를 열고있는 것이다.
중국은 작년 1월 10억명 넘게 시청하는 설날 갈라쇼에 로봇 칼군무를 선보이는 걸 시작으로 4월에는 로봇 하프 마라톤대회, 8월에는 세계로봇운동회를 열면서 휴머노이드 로봇 대중화를 착착 진행했다. 중국은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정책을 보면 중국이 전기차 산업에서 전 세계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한 이후 산업정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게 느껴진다. 중국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벌어진 문화대혁명이란 '암흑기'를 거치며 산업화에서 한국에 뒤처졌다. 중국이 자동차 산업에 본격 진출한 것도 독일 폭스바겐과 상하이자동차가 50대 50으로 합작해, 상하이폭스바겐을 설립한 1984년이다.
중국은 2009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성장했지만, 뒤늦게 내연기관차에 진입한 까닭에 줄곧 독일·미국 등 자동차 선진국의 뒤꽁무니만 보고 쫓아가야 했다. 한국 자동차 기업도 중국에 진출해 한때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2002년 중국에 진출한 현대차는 베이징자동차와 합작해 '베이징현대'를 출범시켰고 엘란트라 택시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베이징 거리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이 기억은 이전 세대의 추억으로만 남을 것 같다.
내연차에서 중국이 얻은 교훈은 선두에 서려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신산업인 전기차 산업에서 앞서가기 위해 전동화 전환을 누구보다 서둘렀고 지금은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가 됐다. 이제 중국은 전기차와 핵심 부품 및 공급망이 상당부분 겹치는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도 장악하려 한다.
오는 8월 초 베이징에서는 올해로 11회째를 맞는 세계로봇대회(World Robot Conference)가 개최된다. 작년 대회에서는 중국·외국 로봇 기업 220곳이 참여해 1500종이 넘는 로봇을 전시했다. 올해는 더 다양한 로봇이 전시될 것으로 보인다. 4월 베이징에서 열린 로봇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로봇 '산디엔'이 약 21km를 50분 26초에 주파하며 작년 기록(2시간 40분) 대비 3배 이상 빨라지는 등 로봇이 해마다 진보하고 있다.
8월 아이를 데리고 중국 베이징으로 가서 로봇대회를 보여주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마주할 중국은 우리가 알던 중국이 아닐 것이다. 한국이 로봇 산업 등 신산업에서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로 서려면, 지금이 마지막 골든 타임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특히 제조 강국의 이점을 활용해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산업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피지컬 AI(인공지능)에 특화된 로봇전략으로 판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