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부동산이었네."
투표 다음날 아침에야 최종 판가름이 날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된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 대한 30년 지기의 첫 한마디였다. 친구는 나름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이 바뀔 것으로 자신했었나 보다. 본투표 느즈막에 투표소에 다녀오더니 자신의 일탈을 자랑스레 털어놓는다. 늘 지지해오던 정당의 후보도, 오세훈 시장도 아닌 다른 번호의 후보를 찍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탈과 상관없이 판세는 이미 정해졌다는 말과 함께.
친구의 자신만만한 예측은 출구조사 때만 해도 철썩 들어맞는 듯했다. 하지만 진짜 투표함 뚜껑이 열리자 출구조사와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정원오 후보는 전체 25개 자치구 중 15곳을 가져갔다. 반면 오 시장이 우세를 보인 자치구는 10곳에 그쳤다. 송파구, 강남구, 강동구 등 유권자 수가 많은 자치구에서 강세를 보인 영향이 커 보인다. 오 시장은 강남구, 서초구 등에서 정 후보의 두배 넘는 표를 가져갔고 아직 개표가 완료되지 않은 송파구와 용산구, 강동구 등에서도 넉넉하게 정 부호를 따돌렸다.
이 중 강남구와 서초구를 제외한 8개 자치구는 모두 지난 1년 동안 집값이 두자릿수 이상 오른 지역이다. 동남권, 한강벨트로 묶이는 서울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지역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집값이 비싸거나 최근 많이 오른 동네가 오 후보가 표를 몰아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숙한 구도다. 과거 여러 차례 선거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민주당 텃밭으로 불리는 지역의 표심은 어땠을까?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 성북구, 구로구 등은 민주당 우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들이다. 지난 대선 때도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30%대 지지밖에 획득하지 못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이런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오 시장은 이들 지역에서 모두 40% 중반대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정 후보가 우세하긴 했지만 오 시장도 그에 못지 않게 선전했다는 의미다.
민주당 핵심 지지층으로 분류되는 2030 젊은 여성층의 표심도 달라졌다. 비록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지만 오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20대 이하 여성 유권자 41.4%의 지지를 받았다. 30대 여성 유권자 지지는 53.6%로 과반 지지를 넘기기까지 했다. 이와 달리 불과 4년 전 2022년 지방선거 출구조사에서는 20대 이하 여성의 67.0%, 30대 여성의 54.1%가 민주당 송영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한 정치 평론가는 집 마련을 포기한 2030세대와 뛰는 집값·전셋값에 지칠 대로 지친 중산층 유권자가 민주당에게 등을 돌린 결과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선거는 민심의 발현이라고 한다. 특히 대통령 재임기간 중 치러지는 총선과 지방선거는 정부·여당의 국정 운영에 대해 국민들이 내리는 성적표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핵심 이슈가 부동산이었다는 세간의 평가가 맞는 것이라면 이같은 선거결과는 서울시민들이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에 그리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는 의미다.
모두의 마음이 똑같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집값이 더 오르길 바랄 것이고 반대로 누군가는 집값이 빠르게 내리길 바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누군가는 자포자기라는 힘든 선택을 하게 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 중 누군가를 '악'으로 규정하기보다 집값이 빠르게 안정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1년간 서울의 아파트값은 10% 이상 올랐다. 규제만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