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누구 하나 떨어져 나가길 바라고 있는 곳도 꽤 있을 거예요."
요즘 항공업계 관계자를 만나면 종종 비슷한 소리의 하소연을 듣는다. 고유가에 고환율까지 악재가 겹치면서 항공업계의 상황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지난해에도 '치킨게임'이다 뭐다 하며 항공업계에 안 좋은 소리만 가득했는데 올해는 중동 전쟁까지 터지며 첩첩산중이 됐다. 사실상 전쟁이 불씨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다.
이렇다 보니 항공업계에서는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경쟁사의 이탈을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마저 드러난다. 비상경영 상황에서도 버틸 체력을 갖춘 대한항공과 달리 자금력도 후방 지원도 약한 저비용항공사(LCC)들은 말 그대로 가뭄에 목이 타는 처지다.
문제는 상황이 나빠졌다고 해서 운임을 마음껏 올릴 수도 없다는 점이다. 항공권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는 곧바로 다른 항공사나 다른 여행지를 찾는다. 항공사 입장에서 유류비 부담이 커졌는데도 특가 항공권을 접기 어려운 이유다. 팔면 팔수록 남는 게 적지만 안 팔면 좌석이 빈다.
특히 중장거리 노선으로 눈을 돌린 항공사들의 고민은 더 깊다. 장거리 노선은 유류비와 환율 영향을 훨씬 크게 받는다. 기재를 띄우는 데 드는 비용 자체가 큰 만큼 탑승률이 조금만 흔들려도 손실 폭이 커진다. 유럽과 미주 노선이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여도 실제 수익성을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지는 이유다.
결국 현재 국적사들 간 경쟁은 '누가 항공권을 더 싸게 파느냐'의 범주를 벗어난 지 오래다. '누가 손실을 덜 보고 버티느냐'의 싸움에 가깝다. 감편은 패배가 아니라 방어 전략이 됐고 특가는 성장 전략이 아니라 좌석을 채우기 위한 고육책이 됐다.
항공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국내 항공사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외여행객이 늘고 일본 노선이 살아난 지난해까지만 해도 모두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고유가와 고환율, 지정학 리스크가 한꺼번에 덮치자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중동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치킨게임이 곧장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 위기는 국적사들이 노선 수익성, 기재 효율, 재무 체력을 다시 따져보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항공업계의 진짜 경쟁은 지금부터다. 끝까지 버틸 수 있는 회사만 살아남는 국면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