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조만간 광주광역시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수백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다. 당초 거론되던 후공정(패키징)을 넘어 전공정까지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산업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자 국부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국내 투자 소식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번 투자 계획은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인프라와 생태계가 미비한 지역에 거대 투자가 추진되는 데 '정치적 압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선거철마다 되풀이된 여야를 막론한 반도체 유치 공약과 지역 안배 요구가 기업의 등 떠밀기식 투자로 이어진 것이라면 국가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호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내세우며 최적지라 강변한다. 하지만 반도체 전공정은 '단순한 전기와 물'이 아니라, 미세공정을 다룰 초정밀 인프라를 요구한다. 더 큰 문제는 인력과 생태계다. 대한민국 반도체 경쟁력의 기반이 용인·평택 등 경기 남부권 '메가 클러스터'에 집중된 이유는 명확하다. 엔지니어들은 지방 근무를 기피하고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인프라가 척박한 곳에 공장만 지어놓는다고 공장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경쟁력은 수천 개의 협력업체와 숙련 인력, 연구개발 역량, 안정적인 전력·용수 공급망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세계 주요 반도체 생산 거점이 예외 없이 거대한 산업 클러스터 형태로 발전한 이유다.
지역 균형 발전을 추구한다고 전국에 특정 산업을 고르게 배치한다면 균형도 발전도 잃는다. 자생력 없는 분산은 균형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은 집중돼야 강해진다. 글로벌 경쟁사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바짝 추격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은 정치적 볼모가 돼 비효율적인 투자를 강요받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전체에게 돌아온다. 기업 경영진으로서도 정치적 압박과 명분에 밀려 투자를 단행했다가 손실을 낸다면 주주대표소송이나 충실의무 위반 논란에 휘말릴 소지가 있다.
반도체 투자가 정치인이 나눠주는 선물이나 선거구민들에게 내세울 업적으로 여겨져선 안 된다. 기업 경영진 역시 정치적 압박에 흔들리지 말고 산업 경쟁력과 주주 가치 관점에서 냉정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