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왜 형벌을 부과하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범죄와 형벌의 관계는 인류 역사상 법질서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탐구되어 온 가장 오래된 법철학적 과제이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의 함무라비 법전에서부터 현대 형법에 이르기까지 형벌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해 왔다. 그러나 인류의 오랜 경험은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 아무리 엄한 처벌을 가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 형법에서는 '응보주의'에서 '예방주의'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이미 발생한 범죄를 응징하는 것보다 같은 잘못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안전에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의료 분야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1999년 미국 의학연구소(IOM)가 발표한'To Err is Human' 보고서는 의료인의 실수로 매년 많은 환자가 사망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당시 의료계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자를 처벌하자, 의료진은 실수를 숨기게 되었고 동일한 사고는 반복되었다. 이후 의료계는 사고보고를 장려하고, 실수의 원인을 조직 차원에서 분석하여 재발을 방지하는 '환자안전문화(Patient Safety Culture)'를 구축하였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비처벌적 보고체계를 환자안전의 핵심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람을 처벌하는 대신 실수를 공유하는 것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한다는 사실을 의료계는 경험을 통해 입증한 것이다. 형법에서의 자수한 사람에게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제도 역시 같은 철학을 담고 있다.
이러한 철학은 항공안전 분야에서도 '공정문화(Just Culture)'라는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항공사고 원인의 약 70~80%가 기계적 결함보다 인적 요인(Human Factors)과 조직적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조종사의 판단 착오, 정비사의 절차 누락, 관제사의 의사소통 오류 등은 대부분 고의가 아닌 과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수조차 엄격하게 처벌한다면 누구도 위험요인을 자발적으로 보고하지 않을 것이다. 보고가 사라지면 데이터도 사라지고, 데이터가 사라지면 위험요인도 발견할 수 없으며, 위험을 예측할 수 없으면 결국 동일한 사고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현장의 자발적인 안전보고가 활성화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전제가 바로 공정문화다. 공정문화는 모든 실수를 무조건 용인하는 제도가 아니다. 고의적인 법규 위반이나 중대한 과실에 대해서는 분명한 책임을 묻되, 단순한 실수와 예측하기 어려운 오류는 조직이 학습의 기회로 활용하도록 하는 안전철학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맞추어 '항공안전법'에 자율보고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또한 국토교통부와 항공안전기술원(KIAST)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위험정보를 수집·분석하여 제도 개선과 예방대책 마련에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자발적인 안전보고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 안전조사와 행정처분 및 형사책임의 합리적 분리, 고의와 중대한 과실의 명확한 기준 마련, 독립적인 안전조사체계, 그리고 보고된 내용을 조직의 개선으로 연결하는 피드백 시스템이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현장에서는 '보고하면 결국 불이익을 받는다'는 불안감이 여전히 존재한다. 결국 안전을 지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이며, 공정문화는 그 신뢰를 제도화하여 미래 안전을 지키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