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교과서 첫 장에는 늘 익숙한 라틴어 구절이 등장한다.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하다면'이라는 뜻이다. 미시경제학의 거장 알프레드 마셜은 복잡다단한 현실을 잘라내 수요와 공급이라는 명쾌한 분석 모형을 만들어냈다. 변수 하나만 움직이고 나머지는 통제하는 방식이다. 이 깔끔한 도식은 경제학을 과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현실 시장에 이 가정을 그대로 대입하면 치명적 오류가 발생한다. 현실 경제에서 '기타 조건'은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얽히면서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 역시 정태적인 균형판이 아니다.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만을 낳는 단순한 세계가 아니다. 프랑스 사상가 루이 알튀세르가 말한 '중층 결정'은 오늘날 부동산시장을 읽는 핵심 키워드다. 여러 원인이 겹겹이 쌓여 나타난 복합적 결과라는 의미다. 복잡한 현상을 단 하나의 요소로 줄여 설명하려는 '환원주의 오류'는 경계해야 한다. 특정 변수 하나만을 주범으로 지목하거나 과대 포장해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위험한 이유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여도 실제 시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사실 주택시장에서 공급이 집값 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이다. 그렇다고 '공급 만능론'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도시의 승리》를 쓴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는 유연한 주택 공급이 매수 광기를 다스리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단기 수요가 폭증할 때 공급은 시차 때문에 즉각 대응하기 어렵다. 공급 만능론에 갇혀 다른 변수를 놓치면 시장을 잘못 읽게 된다. 세금이나 대출을 통한 수요 억제책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조건들이 멈춰 있을 때만 잠시 효과가 있을 뿐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시장은 유기체적인 성격이 있어 규제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노자가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에게 지략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부동산시장에서 더욱 두드러진 것은 '심리 변수'의 거대화다. 집이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핵심 투자 자산이 되면서 심리는 단순한 부속품이 아니라 수요·공급과 함께 시장을 움직이는 '3대 축'으로 자리 잡았다. 심리는 모든 변수의 결합체이지만 때로는 독자적인 동력으로도 움직인다. 초연결 사회에서 SNS를 타고 번지는 집단사고와 군집행동도 일상화됐다. 서로를 모방하며 한쪽으로 쏠리는 무리 짓기는 거대한 투기 거품을 만들었다가 순식간에 폭락이라는 비극을 부른다.
여기에 한국 주택시장 고유의 외풍 취약성이 더해진다. 2022년 하반기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값이 급락한 데는 미국발 고금리 쇼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집값은 거시경제나 글로벌 환경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거대한 외풍이 닥치면 국내의 공급 계획이나 정책적 수단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기도 한다.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고 타이밍을 재려는 시도가 무기력해지는 까닭이다.
부동산시장은 정지된 사진이 아니라 쉼 없이 불규칙하게 흐르는 동영상이다. 인간의 삶과 욕망이 응축된 '생태계'이자 '복잡계'다. 마셜의 가위를 들고 면을 정교하게 잘라내되 그 가위 끝이 닿지 않는 현실의 틈새와 심리의 흐름을 함께 읽어내야 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이러한 복잡계의 본질을 명심해야 한다. 정책의 최종 목표는 시장 안정이다. 그리고 지금 정부가 가장 먼저 다독여야 할 핵심은 바로 수요자의 불안 심리다. 단순히 지표와 통계만 바라보는 일차원적 정책으로는 시장을 설득할 수 없다. 불안 심리가 팽배하면 시장은 펀드멘털을 벗어나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정책의 일관성을 통해 시장에 신뢰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시장과 정부는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관계다. 그 신호가 시장에서 힘을 얻으려면 단단한 '믿음의 생태계'가 먼저 구축되어야 한다. 어찌 보면 원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분하게 참여자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 그것이 실효성 있는 부동산 정책의 진짜 출발점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