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와 하멜의 공통점 다섯 가지[투데이窓/손관승]

손관승 인문여행작가
2026.08.11 03:30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9일 서울 용산구의 한 영화관에서 관람객들이 영화 ‘오디세이’ 홍보물 앞을 지나고 있다.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5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는 8일까지 누적 관객수 137만6787명을 기록하며, 개봉 이후 3일 연속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빠른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6.8.9/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그 누구도 내가 집으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지 못해. 신까지도 말이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화제작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맷 데이먼)는 간절하게 외친다.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와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가 기다리고 있는 이타카에 도대체 언제 도착할까, 3시간 가까이 숨죽이며 지켜봐야 한다. 이 영화를 보며 태풍으로 제주도에 온 '하멜표류기'의 저자 하멜을 떠올리게 된다. 1653년 8월 16일이니 373년 전 바로 이맘때였다. 하멜과 오디세우스 사이에는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이 많다.

20년. 호메로스의 두 작품 중 '일리아드'가 트로이 전쟁 10년의 마지막 기간을 그렸다면 '오디세이아'는 전쟁 후 고향에 돌아오기까지 10년 기록, 합계 20년이다. 1650년 스무 살 하멜이 배를 탔다가 1670년에 고향에 돌아오기까지 역시 20년이 흘렀다. '오디세이아'는 서양문학 처음으로 인생을 여행과 항해에 비유하여 후대의 작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하였다. 인간은 모험을 통해 성장한다지만, 자유인으로 가는 길이 이토록 험난한 것일까?

꿈으로서의 바다. 작품에서는 빼앗긴 절세 미녀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되어있으나 실제 전쟁은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 "그리스 문명은 배고픔을 먹고 자랐다"는 말처럼 땅은 척박하고 언덕은 돌투성이여서 살길은 바다뿐이었다. 고대 그리스어로 바다는 '폰토스', 어원적으로 다리(혹은 길)를 뜻한다. 바다는 두렵지만 용기를 갖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자는 의식의 반영이다. 모험, 낭만, 무역, 약탈이 뒤섞인 시대였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시대정신도 비슷하여 부자가 되는 것이 모두의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배를 탔던 사람 중의 한 명이 하멜이다.

포도주. '오디세이아'에서 포도주와 올리브는 주요 매개체. 거인의 동굴에 갇혔을 때 오디세우스는 괴물에게 도수 높은 포도주를 마시게 하여 취하게 한 뒤 올리브 몽둥이를 사용해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묵은 포도주와 올리브나무는 지켜내야 할 정체성으로 페넬로페와 20년 만의 해후에 앞선 확인 장치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인에게 포도주와 올리브기름의 의미는 각별하여 화폐처럼 쓰였다. 현대의 직장인들에게는 월급이고 퇴직자들에게는 연금이다.

하멜에게도 포도주는 목숨을 구한 생명수였다. 제주도 난파선 안에서 발견한 포도주는 다친 선원들에게 요긴하였을 뿐 아니라 잡으러 온 제주도 관리들에게 따라줬더니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하멜은 기록하고 있다. 그가 속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나가사키로 향하는 배안에 쇼군에게 전할 특별 선물로 포도주를 싣게 하였으니 200여 년 독점 무역의 비밀이다.

7년. 오디세우스가 요정 칼립소(샤를리즈 테론)에 갇혀 있던 기간이다. 황홀함과 황금에 눈이 멀어있다가 자유의 가치를 깨닫기까지 7년이란 시간이 소요된 것. 공교롭게도 하멜이 전남 강진 병영 마을에 체류한 기간도 7년이다. 조선 억류 13년 28일 중 가장 오래 머문 장소이다. 현지 여성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은 일행도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하멜은 17세기의 오디세우스였다.

회복탄력성.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의 목마' 아이디어를 낸 지략가이기는 하지만, 그리스 연합군의 대장은 아가멤논, 싸움을 가장 잘하는 장수는 아킬레우스, 그의 분노가 '일리아드'의 핵심이다. 그런데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주인공이다. 다른 장수보다 힘은 세지 않지만, 설득력과 인내력을 갖춘 데다 고난에서 다시 일어나는 힘, 즉 회복탄력성이 강하다. 호메로스가 창조해 낸 새로운 인간상이다. 하멜 역시 호기심은 많지만 무모하지 않다. 숱한 좌절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났다. 동료들이 현실에 안주해 있어도 자유를 향한 영혼을 잃지 않았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으면 안전하지만,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니라고 했던가. 영화에서 '이타카'는 메타포. 인생의 궁극적 목표, 삶의 의미를 은유한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은 카메라를 돌려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의 이타카는 어디인가요?

손관승 인문여행작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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