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경제와 신뢰 결여 비용[우보세]

유선일 기자
2026.08.21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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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1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1회 수소경제위원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정부·민간위원이 참여하는 이번 위원회는 범정부 차원의 수소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수소산업 생태계 조성방안과 전담기관 지정 등이 논의되며, 이를 통해 수소경제를 육성하고 수소산업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모멘텀을 마련할 계획이다. /사진=고양(경기)=이기범 기자 leekb@

전직 검사 김웅의 책 '검사내전'엔 수차례 사기에도 검사의 특성을 교묘하게 이용해 한 번도 처벌받지 않은 '할머니 사기꾼'을 구속시킨 일화가 나온다. 수배를 풀기 위해 당당하게 검사를 찾아온 할머니 사기꾼은 과거 다른 검사와 달리 김 검사가 사건 기록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자 크게 당황한다. 미리 준비한 세탁세제 환(丸)으로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지는 연기까지 하지만 속임수는 발각된다. 김 검사는 그에게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Kenneth Joseph Arrow)를 아느냐고 물으며 "할머니 때문에 세계 경제가 지체됐다"고 말한다.

실제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애로는 모든 상거래는 '신뢰'를 포함하고 있으며, 상호 신뢰가 결여되면 세계 경제까지 지체된다고 했다. 복잡한 경제이론이나, '할머니 사기꾼'같은 희화화된 사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신뢰 결여'가 얼마나 많은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지 알고 있다. 각종 정책을 수립·시행하는 정부와 민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확정된 정책의 방향이 흔들리거나 힘을 잃으면 기업은 경제적 피해를 보게 돼있다. 투자에 대한 매몰비용이 발생하고 기존 계획을 수정하거나 새로 수립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비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의 '수소경제' 비전을 믿고 사업에 뛰어든 국내 기업도 딱 이런 상황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21년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수소 선도국 달성을 천명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이 목표는 현실에서 너무 멀어졌다. 계획대로면 지난해 이미 ㎏당 6000원까지 떨어졌어야 할 그린수소 가격은 현재 2~3배 높아 수요가 제대로 창출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연 10만대 생산 체계를 갖췄어야 할 수소 승용차는 1년이 지난 지금도 판매가 수월치 않다. 결과적으로 수소 사업으로 '돈 버는 기업'이 사실상 없는 상태다.

업계는 정부의 무관심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수소 사업은 국가를 막론하고 모두 초기 단계라 정부의 '마중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윤석열 정부는 물론이고 이재명 정부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수소 정책 컨트롤타워 '수소경제위원회'가 2024년을 끝으로 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같은 현실을 방증한다. 수소 산업 육성 의지에 의문을 품은 기업들은 하나둘씩 사업에서 발을 빼고 있다.

미국·중국·일본 등은 수소가 미래 핵심 에너지원이 될 것으로 보고 정책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골든 타임'을 놓쳐 기업 이탈이 본격화되면 나중에는 수습할 방법이 없다. 수소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보조금'이 아닌 정책 의지에 대한 '신뢰'라는 어느 전문가의 지적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유선일 기자/사진=유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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