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춘 K-자율주행 시간표, 승부수 되려면[기자수첩]

강주헌 기자
2026.09.16 05:50

"지금 서두르면 궁극적 목표와 거리가 먼, 어정쩡한 레벨 2++(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해야 하지만 도심 교차로와 비보호 좌회전까지 차량이 스스로 처리하는 단계)를 양산하게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박민우 현대자동차·기아 AVP본부장 사장이 지난 11일 경기 성남시 포티투닷 본사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미디어데이'에서 한 말이다.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 AI(인공지능) '아트리아'를 얹은 레벨 2++ 차량 양산을 2029년 하반기로 잡은 이유를 묻자 일정을 당길 수도 있었지만 전략적으로 늦춰 잡았다며 이같이 답했다.

하지만 경쟁사들의 자율주행 시계는 이미 빠르게 돌고 있다. 테슬라 FSD(완전자율주행)는 누적 주행 100억마일을 넘어섰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독일 아우토반에서 시속 95㎞까지 전방을 주시하지 않아도 되는 레벨 3를 판다. 중국은 지난해 말 일부 브랜드에 레벨 3 제품 진입을 허가하며 사고 책임이 제조사로 넘어가는 길을 열었다. 그래서 개발에 3년을 더 들이겠다고 한 판단은 부담이 작지 않다.

그럼에도 일정을 늦춘 이유는 분명하다. 박 사장은 자율주행이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라 고객 안전과 신뢰에 직결된다며 시장에 빠르게 내놓는 것만 목표로 기술의 완성도나 품질을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완성도를 위해 시간을 더 쓰겠다는 결정이라 명분은 충분하다.

문제는 그 간극을 메울 전략이다. 일단 현대차그룹은 내년까지 주행·주차·능동안전 기능을 완성하는데 주력한다. 이어 2028년에는 엣지 케이스(예외 상황)를 모으고, 2029년부터 북미·유럽 안전 인증을 준비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조 역량을 앞세워 반격의 기회를 모색한다. 양산이 시작되면 5년 내 경쟁사의 누적 데이터를 추월할 수 있다는게 회사측 전망이다.

여기에 제도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곧 나올 고속도로 주행보조 기능만 해도 미국에서는 차가 알아서 차선을 바꾸고 램프로 진입하지만 국내에서는 매 동작마다 운전자 확인을 받아야 한다. 기술을 늦추는 동안 규제가 그대로면 2029년에도 반쪽짜리 자율주행차가 나온다.

안전하게 가겠다는 원칙은 이미 정했고, 남은 것은 완성도를 증명하는 일이다. 앞으로 선보일 자율주행차는 늦게 나온게 아니라 그만큼 더 검증된 명품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 늦춘 3년이 전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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