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통합이 곧 신속이다

원정연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2026.09.23 05:00
원정연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높이를 낮추자고 했더니 건물이 늘어났다. 신속통합기획 자문회의에서 주변과의 조화를 위해 단지 남동쪽 건물을 낮추자는 의견이 모였다. 개선안에서 건물은 낮아진 대신 동이 늘었다. 줄어든 층에 담지 못한 주택이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동 사이는 좁아졌다. 밖에서 보기엔 나아졌지만 정작 주민에게는 더 답답한 단지가 될 수도 있었다.

정비계획을 검토할 땐 결정의 여파를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높이를 바꾸면 배치와 동 간격, 사업비와 주민 부담이 달라진다. 공원과 도로도 마찬가지다. 배치를 바꿔 풀리는 일도 있지만 필요한 땅과 돈을 누가 감당할지 다시 따져야 할 때도 있다. 공공성 확보 요구에는 구체적인 대안과 계산이 따라야 한다. 재개발·재건축은 노후한 집을 바꾸고 주택을 공급하며 도로와 공원 등 기반시설을 다시 짜는 일이다. 구역 안 주민뿐 아니라 옆 동네에서 학교와 역을 오가는 사람의 생활도 달라진다. 한번 정해진 길과 건물의 배치는 수십 년간 남는다.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은 정비계획 초기부터 시와 자치구, 주민, 전문가가 개발 방향을 함께 논의하는 공공지원제도다. 공공은 완성된 계획을 심사하기 전 조건을 조율하고 민간은 사업 가능한 조건을 일찍 확인한다. 공원을 확보하려면 어디를 얼마나 비워야 할까. 필요한 주택을 지으려면 높이와 배치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대안을 두고 각자의 요구가 공간과 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따진다. 누가 혜택을 받고 누가 부담을 지는지도 살핀다. 통합은 여러 의견을 한자리에 모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한 요구를 받아들일 때 다른 조건은 어떻게 바뀌는지 판단해야 한다. 이 조율을 미루면 다음 단계에서 계획을 다시 고쳐야 한다. 초기 논의가 중요한 이유다.

사업성은 공공성의 반대말이 아니다. 주민이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사업이 멈추면 확보하기로 한 공원도 종이 위에만 남는다. 둘을 조율하는 방식은 지역마다 다르다. 산자락과 역세권에 같은 답을 적용할 수 없고, 공원은 면적이 같아도 위치에 따라 쓸모가 달라진다. 전문가가 대안을 만들어야 할 지점이다. 주민의 경험도 계획을 바꿀 수 있다. 구릉지에선 도면상 가까운 공원이 계단 때문에 실제로는 멀 수 있다. 왜 그 길을 돌아가는지, 어느 출입구가 불편한지 주민에게 묻고 지형의 높낮이와 동선을 살펴야 알 수 있다. 계획을 세운 뒤 설명해서는 늦다.

초기에 어렵게 맞춘 조건이 구역 지정 이후의 설계와 심의로 이어질 때 조율의 의미도 살아난다. 여건이 달라져 계획을 고쳐도 처음의 판단 근거를 공유하면 같은 논의를 되풀이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신속통합기획이 입주까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떤 충돌을 미리 풀었고 그 판단이 다음 단계에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새집을 기다리는 주민에게 시간은 절실하다. 통합으로 줄이려는 것은 뒤늦게 문제를 발견해 계획을 다시 고치는 시간이다. 다음 단계에서 부딪힐 문제를 미리 풀고 합의한 조건을 실행 가능한 계획에 담는 일이 결국 사업을 앞당긴다. 주택 수를 확인한 뒤에는 그 집 현관을 나와 동네를 한 바퀴 걷는 모습까지 그려보고 싶다. 새집을 얻고도 다니던 길을 잃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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