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신고전 영화 반열에 오른 '그녀'(Her, 2014)는 사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질문에 관한 영화다. 테오도르는 남의 연애편지를 대필하지만 정작 자신의 연애편지를 쓸 사람이 없다. 우연히 인공지능 OS 사만다를 알게 되고 마침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언제나 먼저 질문을 하는 사람은 테오도르다.
테오도르는 마침내 사만다에게 동시에 대화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숫자를 묻는데, 동시 대화는 8316명 사랑하는 사람은 614명이나 된다니 오로지 한 사람의 사랑을 원했던 테오도르는 크게 각성한다. 사만다는 거꾸로 테오도르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테오도르 하고만 사랑을 나누는 것에 의지가 없다. AI는 사람에게 질문하지 않고 질문에 답할 뿐이다.
르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며 인간의 본질을 이성 즉 지능에 두었다. 생물학 연구 성과가 축적되자 지능은 인간에게만 있지 않았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건 질문이다. 철학자 게오르크 슈타이너는 질문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콰렌스(Homo quaerens)'를 언급했다. 라틴어 '쿠아이레레'(quaerere)에서 비롯한 '콰렌스'는 '찾다' '구하다' '추구,탐구하다'는 뜻이다. 종교적 구원의 뜻도 포함한다. 질문의 토대는 결핍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신에게도 질문하고 답을 구한다. 인간은 지식을 많이 저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질문을 통해서 필요한 답을 찾아가면서 성장해 가는 존재다.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결함 극복과 성장이 더디다. AI는 부족한 것이 없고 채울 필요도 없기에 질문이 중요치 않다. 문화예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질문하는 역할을 통해 사회적 토론을 이끌어낸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도 사랑을 넘어서 질문에 관한 영화다. "사랑이 불가능해 보이는 시대에 그래도 어떤 사랑이 가능한지, 그 사랑을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고 싶었다"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사랑은 이성간 사랑이나 가족 사이 사랑을 넘어선다. 타인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이 감독은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그들로서 할 수 있을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라면서 "그들의 고통을 소비하거나 영화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사용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평생 해 온 질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창동 감독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영화를 만들었을까. 아니었다. "지금도 쉽게 답을 찾지 못했다"라고 했다. AI 등 테크놀로지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사람들 사이가 비대면으로 전환되는 시대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즉 "노동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사람 간의 관계가 끊어져가는 시대에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런 점들은 영화 '암살자(들)'에서도 이어진다. 저격 사건의 현장에서 의문점을 갖게 된 경찰과 기자는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사람들이 회피하면서 그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기에 이른다. 이는 영화에만 한정되지 않고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자체에 의문점이 있다면 거꾸로 질문하면 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막거나 방해하는 것은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것이다. AI 시대에 우리가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질문하기라는 점을 이런 영화들로 다시 환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