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20대 청년들, 일본에서 '애국'을 실천하다

오사카=정봄 기자
2015.08.12 05:14

[르포] 청년단체 '국인'의 일본 내 한국학교 글로벌 멘토링 현장을 찾아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 무더운 날씨였다. 38~40℃를 오가는 일본 오사카의 타오르는 날씨를 뚫고 고즈넉한 도시, 교토에 도착했을 때는 날도 많이 기울어 더위가 한 풀 꺾여 있었다. 취재 대상은 교토 국제학교에서 진행될 '한국마을' 프로그램. 일본 고도(古都) 교토에서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국마을을 재현했다고 한다.

지난달 22일 나고야 한국학교를 시작으로 오사카 건국학교(7월30일~8월8일), 오사카 금강학교(8월2~8일), 교토국제학교(8월1~8일) 등 4개 학교에서 '국인'의 멘토링 활동이 진행됐다. '국인'은 국가적 인재, 국제적 인재의 줄임말로, 사단법인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의 '우수예비대학생 시장경제 및 글로벌 리더십 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활동하는 단체다. 2004년 처음 결성됐으며, 국내 대학은 물론 일본, 미국 등 전 세계 20여개 대학의 학생들이 소속돼 있다. 지난 5일 진행된 교토 국제학교의 '한국마을' 프로그램도 국인이 진행하는 글로벌멘토링의 일환이었다.

5일 교토 국제학교에서 진행된 한국마을 프로그램. /사진=정봄 기자

'한국마을' 프로그램은 입국심사, 환전, 한국가게, 식당, 병원, 윷놀이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처음 입국심사가 진행되는 국제학교 강당에 발을 들여놓자, 웃음소리부터 들렸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아이들은 국인 대학생 '선생님'들과 장난을 치며 한껏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티켓이 없으면 한국마을에 들어갈 수 없어요. 티켓을 주고 입국심사관의 질문에 답변하세요."

그럴 듯하게 만든 한국마을 항공탑승권. 아이들은 저마다 티켓을 소중하게 들고 입국심사관 역할을 맡은 국인 대학생 앞으로 나섰다. 교토 국제학교 학생들은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 서툰 한국어로 심사관의 질문에 답하면 한국 지폐를 작게 축소해 만든 '가짜 돈'을 받을 수 있다. 이 돈으로 한국마을에서의 모든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국인 대학생들이 직접 만든 화채. /사진=정봄 기자

"여기요. 이건 어떤 음식인가요? 많이 주세요. 더 주세요."

조리실에 차려놓은 한국마을 식당에선 국인 대학생들이 한국 식당에서 많이 사용하는 한국어를 알려줬다. 익살스럽게 한국에서는 '많이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으면 조금만 준다는 농담도 덧붙였다. 메뉴는 비빔면과 화채.

중1부터 글로벌 멘토링에 참가했다는 박리채 양(15)은 "맵지만 맛도 있다"며 "더 주세요"라고 방금 배운 한국어를 써먹으며 빈 그릇을 내밀었다. 박 양은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 악기와 음악, 가수 '엑소'도 좋아한다. 모든 설명을 한국어로 해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한국인이니까요"라며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4개월 전 방문한 서울의 명동 거리를 그리워하는 아이였다.

제 몸에 비해 큰 윷가락을 교토 국제학교 학생이 힘껏 던지고 있다. /사진=정봄 기자

윷놀이는 설명 시간엔 시큰둥했지만 실제로 놀이를 시작하자 반응이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한 아이가 두 팔로 안기에도 버거운 대형 윷가락을 몸을 통째로 사용해 던지자 '와~' 하고 박수가 터졌다.

유난히 국제학교 아이들과 친해 보이는 국인 대학생 조윤지 씨(연세대 1학년)와 마주쳤다. 국제학교 초등학교 2학년인 최가림 양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장난을 치는 모습이 일본에서 처음 만난 사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친동생처럼 보여요. 어떻게 며칠만에 그렇게 친해졌죠?"

국인 12기 조 씨는 일본어를 거의 못한다고 했다. 조 씨는 "조금씩 손짓 발짓, 행동으로 의사소통을 했다"며 "캘리그라피나 다른 교육프로그램을 함께 하면서 친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예쁘고 너무 사랑스럽다"며 "처음에는 일본어를 못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지 고민이었지만 언어적 장벽을 넘어 전해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6일 오사카 건국학교에서 국인 글로벌멘토링의 일환으로 '연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사진=정봄 기자

교토를 떠나 오사카로 이동했다. 오사카 건국학교에서는 문화체험 '연날리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연의 유래, 지역간 차별화된 연의 모습, 비행기와 연의 공통점 등 역사, 예술, 과학을 넘나드는 융합교육이 인상적이었다. 이날은 방패연과 가오리연을 만들었다. 하나하나 꼼꼼이 알려주는 국인 이강희 씨(고려대 영어영문)의 설명에 따라 아이들이 연을 완성시켜 나갔다. 중살, 허릿살, 장살의 순서로 연을 조심스럽게 붙이고 실을 촘촘히 감고 나무를 구부린다. 연이 완성되면 이제 날려볼 차례.

/사진=정봄 기자

/사진=정봄 기자

이 날은 야속하게도 바람이 약했고 햇볕은 따가웠지만 아이들은 열심히 연을 들고 뛰었다. 연에는 자신들의 '소망'이 적혀 있었다. '교사가 되게 해주세요.' '한국 생활에 기죽지 않게 해주세요.' '국인 선생님들 철 좀 들게 해주세요.' 진심이 담긴 소망부터 장난기 넘치는 내용까지. 아이들의 소망이 담긴 연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자,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글로벌멘토링 마지막 날인 지난 6일 건국학교, 금강학교, 국제학교에서 진행된 수료식에서는 아이들의 소감들을 들을 수 있었다. 금강학교 호소이 쇼우 군(12)은 "윷놀이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고토 시게루 군(11)은 "가면을 만들 때 찰흙의 촉감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멘토링 과정을 다 이수한 아이들에게 수료증과 축하의 의미로 과자가 함께 증정됐다. 국인 선생님들의 정성이 담긴 한국 과자 묶음이었다.

멘토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멘토와 멘티와의 관계다. 해가 갈수록 국인 글로벌멘토링에 참가한 학생들이 다음 해에 또 다시 참가하는 빈도가 커졌다. 그만큼 만족도가 높기 때문.

국인 창단 멤버 이승환 씨(30)는 "초기 글로벌 멘토링에서 아이들과 헤어지며 다음 해에 또 만나자고 말하곤 했다"며 "하지만 막상 다음해에 못 오는 국인 멤버가 많자 민족학교 학생들이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멘토링이 자리 잡고 연속으로 활동하는 국인 멤버가 늘어나니까 지금은 자신있게 '다음에 또 보자'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수료식이 끝나고 교실을 나서자 학부모들이 한 곳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멘토링 과정을 마친 아이들을 마중 나온 어머니들이었다. 네 명의 자녀를 '민족학교'에 보내고 있다는 김연아 씨(47)는 "이렇게 한국문화 체험의 좋은 기회를 준 국인 대학생들에게 감사하고 대견하다"며 "우리 아이는 멘토링 때 만든 탈을 곱게 집안에 걸어놓더라"며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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