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킹맘 A씨(40·서울 성북구)는 현재 만 1세, 4세 되는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A씨는 정부와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 지출을 서로 미룬다는 뉴스를 보며 "이미 2015년도 예산이 힘겹게 편성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올해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게 놀랍지 않다"고 한숨지었다. 그는 "현 상태는 아이들을 볼모로 교육부와 교육감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꼴 아니냐"며 "이 모든 것이 정치적 사안이라고 한다면, 이번 총선 때 누리과정 예산을 포함해서 아이들의 복지 문제를 지켜줄 수 있는 후보를 찍겠다"고 말했다.
총선이 넉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부와 전국 시·도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놓고 정면으로 맞붙었다. 정부 측에서 예산 미편성을 놓고 '법적 대응'을 언급하자, 시·도교육감들은 국회 긴급회의를 제안하며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지출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학부모 혼란이 가중되는 현 시점에서 예산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경우 누리과정 문제 역시 국정교과서, 사시 폐지 유예 등과 같이 총선 아이템으로 급부상 할 전망이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와 국회는 누리과정 문제로 교육현장에 야기된 갈등과 불안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며 "오는 21일 국회에서 여·야 대표와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장, 교육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참석하는 긴급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협의회의 이번 발표는 정부가 전날인 16일 국무조정실장 주재 시·도교육청 누리과정 예산점검 긴급 차관회의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시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방침을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현재는 이번 국회에서 누리과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년도 '보육대란'이 자명한 상황이다. 전국 17개 시·도 중 어린이집과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이 모두 확보된 곳은 현재까지 단 한 곳도 없기 때문.
그나마 어린이집과 유치원 예산이 고르게 편성된 지역은 울산, 경북, 대구 등 여당 의석수가 많은 지역이다. 반면 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교육감도 진보 성향을 띄는 서울, 광주, 전남 등은 당장 다음달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 예산이 모두 지급되지 않을 예정이다. 인천, 강원, 부산, 대전, 충남, 경남, 제주 등은 의회가 12개월분의 유치원 예산 일부를 삭감하고 이를 2~6개월분의 어린이집 보육료로 편성한 상태다.
정부가 법적 대응까지 언급하며 논쟁이 장기화 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학부모들은 큰 혼란을 느끼고 있다. 올해 아들의 유치원 입학을 위해 유치원 5군데를 돌아다녔다는 워킹맘 B씨(37·서울 성동구)는 "5군데 유치원 모두 '22만원 가량의 국가 보조금이 나오기 때문에 이를 제외한 부담금만 내면 된다'고 설명했다"며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사안이 길어지면 결국 내년 4월 치러질 총선에 누리과정 문제 역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A씨는 "30~40대 엄마들은 대부분 정치에 관심없는 중도층으로 분류되지만, 누리과정 예산이 편성되지 않으면 결국 원인을 제공한 게 누구냐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그 결과는 총선 때 표로 나타날 것"이라며 "저출산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유아 복지를 책임지지 못하는 후보는 분명히 낙오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석 교육재정확대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현 상황이라면 늦어도 2월 초 예산에 구멍이 나고 엄청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될 것"이라며 "이미 야당이 누리과정 문제를 총선 공약 중 하나로 잡아가고 있는 만큼, 해당 이슈에 대해 범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