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예전부터 즐기던 취미가 있다. 퇴근할 때 또는 쉬는 날 무작위로 아무 버스나 잡아 타고 전혀 가보지 않은 모르는 동네에 내려 음악을 들으며 마을 구경을 하며 걷는 조금은 괴상한(?) 취미다. 낯선 곳을 걷다 보면 새로운 동네를 알아가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지켜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이러한 취미를 즐기다보니 구석진 곳까지 서울의 많은 곳을 직접 가보게 됐다. 그리고 서울에 열악한 주거 지역이 너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극히 일부인 고급 주택 단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주택가에선 골목 골목마다 주차된 차로 넘쳐 난다. 불이 나면 소방차가 들어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차 한대 지나가기 버거운 골목이 대부분이었다. 주거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져 나무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성냥갑 같이 생긴 빌라만 가득한 동네도 많았다. 일부 큰 공원이 위치한 지역은 정말 축복 받았다고 할 정도로 대부분 열악한 주거 환경이었고, 마을 골목시장도 생기를 잃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여기가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열악했다.
저층 주거단지를 허물고 대규모 아파트를 개발하는 뉴타운 사업이 사업성 부재, 주민 반대 등으로 무산되는 곳이 많아지면서 서울시가 도시재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엔 박원순 시장이 도시재생현장을 방문, 주민들을 만나 애로를 청취하는 등 발 벗고 나섰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성과가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사실 도시재생은 태생부터 한계를 지닌다. 도시재생을 추진해야 할 곳은 서울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너무 나도 많지만 예산은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올해 도시재생 예산은 4343억원에 불과하다. 부족한 예산을 쪼개 조금씩 서울 전역에 분배해 주거환경정비를 진행하다 보면 생색내기도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동안 주거 환경은 더욱 열악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일례로 서울의 도시재생 시범구역인 상도4동(동작구)만 하더라도 도시재생에 투입되는 예산은 3년간 100억원이다. 도시재생 맛만 볼 뿐 근본적 도시재생을 일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도시재생이 성공하려면 주민들이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체감된 변화가 필요하다. 아스팔트 일색인 이면도로를 보행자 친화형 거리로 산뜻하게 바꾸고, 마을 곳곳에 조그만 공원과 도서관을 조성해야 한다. 옥상정원도 가꾸고, 하늘을 뒤덮은 전선들도 지중화로 해결해야 한다. 광주시 송정시장의 리모델링 성공사례에서 보듯 골목시장을 살리기 위한 지원 등도 필수다.
얼마 전 동대문구 한 저층주거단지 빌라에 거주하는 친구를 만나 도시재생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재개발을 기대하다 낙담한 친구는 "뉴타운을 파기한 건 서울시의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구는 "강남 이외 지역의 뉴타운·재개발사업이 사업성이 떨어지면 해제하는 대신 강남보다 더 많은 인센티브를 줘서라도 사업성을 키우는 게 맞다. 그래야만 강남 이외 주거 환경이 근본적으로 개선된다"고 주장했다.
친구 말대로라면 서울은 난개발과 또 다른 투기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도시재생 현황을 보고 있자니 공적 자원의 도시재생과 민간 재개발을 적절히 조화시켜 투트랙으로 가져가는 것도 대안이란 생각도 들었다. 정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