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과 잔해가 뒤엉킨 전쟁·재난 현장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바닥 대신 '안전한 공간'에 눕힐 수 있도록 고안된 접이식 요람이 있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발레리오 비나치아(Valerio Vinaccia)가 설계한 '아나코-긴급요람'이다. 이 요람은 최근 2년간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시리아 등 분쟁·재난 지역에 1000개 이상 전달됐다. 또 오환종 디자이너가 고안한 '라디스 음용수 UV 살균기'는 우간다, 동티모르 등 깨끗한 물 확보가 어려운 취약지역에 2500대가 보급, 식수 위생 문제 해결에 쓰였다. 모두 서울디자인어워드 2025 톱10에 선정된 수상작이다. 디자인이 보기 좋은 결과물을 넘어 생명과 안전, 존엄을 지키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12일 서울디자인재단에 따르면 올해도 전 세계의 지속가능 디자인 사례를 발굴하는 '서울디자인어워드 2026'가 열린다. 올해로 7회를 맞는 서울디자인어워드는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디자인을 조명하는 글로벌 공공형 시상제도다. 기후위기, 전쟁과 재난, 에너지 불평등, 도시 공동체 회복 같은 복합 과제를 디자인으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2019년 첫해 출품작 75개로 시작해 지난해 74개국 941개 프로젝트가 출품되며 국제적인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IF·레드닷·IDEA 등 세계 주요 디자인상보다 더 많은 국가가 참여했다고 재단 측은 설명했다. 단순히 미적 완성도나 산업적 성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까지 함께 본다는 점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올해 '서울디자인어워드'는 상의 외연과 의미를 한층 넓혔다. 접수 분야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바탕으로 △건강과 평화 △평등한 기회 △에너지와 환경 △도시와 공동체 등 4개 부문으로 운영된다. 접수는 올해 6월 말까지다. 본상은 이미 생산·실현돼 사용 중인 프로젝트와 제품을 대상으로 하고, 대학(원)생 등이 참여할 수 있는 '영디자이너상'은 콘셉트 목업이나 프로토타입, 기획 단계의 아이디어를 받는다.
여기에 세계적 디자인 전문매체 디자인붐(designboom)이 직접 선정하는 특별상 3선, 기업·기관의 지속가능 실천을 조명하는 'ESG 디자인 임팩트상'도 새로 마련됐다. 디자인붐 특별상 수상자에게는 디자인붐 플랫폼을 통한 특집기사 게재 등 글로벌 홍보 기회도 주어진다.
지난해 대상은 미국·나이지리아의 '자자 에너지 허브'가 차지했다. 태양광 허브와 충전식 배터리 시스템으로 전력 인프라가 취약한 나이지리아 농촌의 에너지 불평등 문제를 풀어낸 프로젝트다. 주민들이 소액 요금으로 조명과 휴대전화 충전, 선풍기 등 일상에 필요한 전기를 사용하고, 현지 재료·인력을 활용한 제작 방식으로 지속가능성과 확장성을 인정받았다.
올해도 서울디자인어워드는 전쟁과 재난, 물과 에너지, 공동체와 환경 문제를 바꾸는 해법을 찾는 무대로 꾸려진다. 총상금은 1억5000만원 규모이며 60선 이상을 선정한다. 시상식과 국제 콘퍼런스는 오는 10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다. 차강희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이사는 "서울디자인어워드는 더 나은 일상을 만들고 세상을 지속가능하게 변화시키는 디자인의 가치를 조명하는 담론의 장"이라며 "선한 영향력으로 변화를 이끄는 디자이너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