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시중은행 지점. 34도의 폭염을 피해 '무더위쉼터' 안내문을 보고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 잠시 더위를 식히고 있자 직원 한 명이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무더위쉼터를 이용하려고 왔습니다"라고 답하자 직원은 잠시 "네?"라고 되물었고, 다시 "무더위쉼터요"라고 설명하자 "아, 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용을 제지하거나 불편한 기색은 없었다. 다만 은행 업무가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쉬기 위해 들어온 사람으로서는 '정말 편하게 있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어색함이 밀려왔다. 무더위쉼터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은행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일반 시민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은 아직 충분히 자리 잡지 않은 듯했다.
행정안전부도 이 같은 분위기를 정책이 현장에 안착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민간 협약 방식이다 보니 '은행에 가서 쉬면 된다'는 문화가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는 은행 업무가 없더라도 누구나 편하게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찾은 종각역 '이동노동자쉼터'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원칙적으로 배달기사와 대리운전기사 등 이동노동자를 위한 공간이지만, 일반 시민도 현장에서 전용 앱(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뒤 QR코드를 발급받으면 이용할 수 있었다. 실내에는 에어컨과 휴게 공간, 생수, 스틱커피 등이 마련돼 있었고 이용객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휴대전화를 충전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행안부는 여름철 폭염에 대비해 전국 약 9만3000개의 무더위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경로당 약 6만9000곳을 비롯해 은행 등 민간시설 1만6000여곳, 주민센터·복지관 등 공공시설 약 8000곳이 쉼터로 지정돼 있다. 냉방시설을 갖춘 공간을 활용해 누구나 폭염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다만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제한적이었다. 전체 무더위쉼터의 약 75%가 경로당이다. 경로당은 65세 이상 어르신을 위한 시설이라, 일반 시민이 무더위쉼터로 이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행안부는 현재 보건복지부의 냉방비 지원을 받는 전국 경로당을 무더위쉼터로 활용하고 있다.
행안부도 이 같은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취약계층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언제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민간시설과 공공시설 중심의 생활밀착형 쉼터를 지속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앞으로 무더위쉼터를 단순히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양적 확대와 질적 세분화'를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은행 등 민간시설과 협업을 확대해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쉼터를 늘리고 건설노동자와 이동노동자, 어르신, 장애인 등 폭염 취약계층의 특성에 맞춘 맞춤형 쉼터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단순히 냉방 공간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이용 대상별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과 운영 방식도 다양화할 방침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폭염이 심해지면서 이제는 취약계층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언제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민간 참여를 확대해 생활 속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쉼터를 늘리는 것이 한 축이고, 동시에 건설노동자와 어르신, 장애인 등 대상별 수요를 고려한 맞춤형 쉼터도 확대하는 등 '양적 확대와 질적 세분화'를 함께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