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당근을 왜 갈아엎죠?"…제주가 바꾼 '폐기의 공식'

제주=김승한 기자
2026.09.06 12:00

[로컬의 재발견, 삶을 바꾸는 연대]⑪제주 '제주특별자치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

[편집자주] 양극화와 지방소멸 등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사회적기업·마을기업 등을 아우르는 '사회연대경제'가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는다. 사회연대경제가 가치창출을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사회적기업 생드르영농조합법인의 당근밭. /사진제공=제주특별자치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

"멀쩡한 농산물을 왜 돈을 들여 갈아엎어야 할까."

제주에서 사회연대경제는 이 질문에 새로운 답을 찾고 있다. 해마다 과잉 생산되는 당근과 양배추 등을 가공·상품화해 새로운 수요처를 만드는 방식이다. 산지폐기 외에 다른 판로를 만들어 농가와 지역 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정지형 제주특별자치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지난달 28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제주에서는 매년 과잉 생산되는 농산물이 생기고 이를 폐기하는 데도 재정이 투입된다"며 "판매해도 문제가 없는 농산물을 꼭 폐기해서 물량을 조절해야 하느냐는 고민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제주는 농산물이 과잉 생산돼 가격 하락이 예상되면 시장 물량을 줄이기 위해 산지폐기를 한다. 센터는 과잉 농산물에 가공이라는 별도 수요처를 만들어 폐기 물량을 줄이는 데 주목했다.

제주지역 사회적기업은 약 160곳, 마을기업까지 합치면 200곳가량이다. 약 30%가 농산물 가공·유통·판매 등 식품 분야에서 활동한다는 게 센터 측 설명이다. 정 국장은 "과거에는 가공기업은 가공기업대로, 생산자는 생산자대로 각개전투를 했다"며 "각자의 전문성과 역량에 맞춰 협업할 수 있는 구조를 하나의 트랙으로 연결해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윤선정 디자인 기자
버리기 전에 상품으로…과잉 농산물에 새 판로

핵심은 역할 분담이다. 과잉 농산물을 가공용으로 수매하면 규모를 갖춘 조직이 전처리·가공하고, 소규모 사회적경제 기업은 이를 원료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생드르영농조합법인은 이 과정의 거점이다. 제주 농산물을 연간 4500~5000톤 규모로 유통하며 대량 수매와 전처리·가공 역량을 갖추고 있다.

김기홍 생드르영농조합법인 전무는 "우리가 수매와 가공을 맡고 다른 기업들이 완제품을 만들거나 유통하면 서로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새로운 수요다. 과잉 농산물을 기존 시장에 그대로 공급하면 수급조절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이에 가공 원료로 활용해 기존 시장과의 경쟁을 줄이고 수입 원료 일부를 대체하는 방안 등을 구상하고 있다.

산지폐기에 쓰이는 재정의 활용 방식을 넓히자는 제안도 나온다. 김 전무는 "같은 예산을 투입해도 농산물을 갈아엎으면 매몰비용이 되지만 이를 제품화하고 유통시키면 경제 규모를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지형 제주특별자치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 사무국장(왼쪽)과 김기홍 생드르영농조합법인 전무. /사진제공=행정안전부
'각개전투' 넘어 '생태계'로

과제는 가공·저장시설과 판로다. 생산 시기가 몰리는 제주 농산물을 처리하려면 관련 시설이 필요하지만 작은 기업이 개별적으로 갖추기는 어렵다.

센터는 생드르 같은 거점 조직이 수매·전처리를 맡고 소규모 기업은 상품 개발·판매에 집중하는 구조를 만들 계획이다.

목표는 지원이 끝난 뒤에도 스스로 돌아가는 생태계다. 김 전무는 "각자가 가장 잘하는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역할을 나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3년 뒤 보조가 없어도 이 생태계와 사업체들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정 국장도 "자본이나 기업 중심으로 끌려가는 경제활동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경제활동을 찾아가는 것이 사회연대경제의 역할"이라며 "기업들이 각자 성장하는 것을 넘어 함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갈아엎는 것 외에 가공·상품화라는 길을 만들면 과잉 농산물은 지역 기업의 원료가 되고 매출과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다. 밭에서 사라질 농산물을 지역경제 안에서 다시 돌게 하는 것. 제주 사회연대경제가 바꾸려는 '폐기의 공식'이다.

제주 마을기업 무릉외갓집. /사진제공=제주특별자치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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