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에서 제일 속이 쓰린 사람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일지 모른다.
'무상급식 반대의 성자', '보수의 잔다르크'로 3년8개월간 굳힌 캐릭터를 하루아침에 뺏겼기 때문이다. 무상급식 중단을 단행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쏟아지는 비판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대권주자가 됐다.▶'출장골프' 홍준표, 대선주자 지지도 5위 '이변'
오 전 시장도 나름대로 준비는 했다. 6개월 아프리카 일정을 마치고 지난 1월 귀국한 그는 여당 의원들과 접촉하면서 복귀를 모색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사적으로 만났다는 얘기가 나돌았고, 공석인 새누리당 지명직 최고위원에 내정됐다는 설도 흘러다녔다.
2월 '선별적 복지'가 쟁점이 되자 언론이 찾은 인터뷰 대상은 당연히 오 전 시장이었다.
그런데 타이밍을 놓쳤다.
홍 지사는 3월 초 오 전 시장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던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하고, 야당 대표의 항의 방문으로 주가를 올렸다. 비즈니스석 논란, 해외출장 골프도 어쨌든 이슈가 됐다. 정치는 생물이라더니, 대중은 이제 무상급식 반대의 아이콘으로 홍 지사를 떠올린다. '무관'의 오시장으로선 캐릭터만으로 뭔가를 해볼 수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2월 언론 인터뷰에서만 해도 여유가 있던 오 전 시장은 2일 4·29 재보선 지원유세에 나섰다. 서울 관악을에 출마한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가 대상이다. 앞서 오 전 시장이 지난 달 26일 한 말에선 다급함이 느껴진다. "비록 시장직을 거는 실수를 해서 처지가 지금 좀 곤란하게 됐지만, 선거를 보는 눈은 좀 있다. 이번에 정말 뛰어볼만 하겠다."
그러나 오 전 시장이 굳이 도와주기 전에도 이미 정동영 전 의원이 도와주는 바람에, 오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오 후보는 2일 오 전 시장과 자신을 '관악 을 오브라더스'라고 소개했지만, 언제부터 그 둘이 형제 같은 사이었는지 어리둥절해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정치권은 오 전 시장의 선거 지원을 그 자신의 정치적 재기 시도로 보고 있다.
오 전 시장은 최근 정몽준 전 의원과의 테니스 회동에서 내년 총선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고, 출마를 긍정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의원은 오 전 시장에게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을 추천했다.
오 전 시장이 정치적 재기의 첫 발걸음을 재보선 후보 지원으로 잡은 데 대해 정치권에선 아쉽다는 평들이 나온다.
홍 지사에게 선별적 복지 캐릭터를 빼앗긴 상황이지만, 보수 지지층들에게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우선적으로 부각시키는 방법을 찾는게 나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