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2일 오전 10시 10분쯤 국회 본청 4층 기획재정위원회 소회의실. 올해 초 한바탕 홍역을 치른 '연말정산 사태'의 후속책이 조세법안심사소위원회(조세소위)에서 처음으로 논의되는 자리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조세소위원장인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 개회선언를 선언했다. 통상 비공개로 진행되는 조세소위 회의실 앞에는 이미 '뻗치기'를 각오하고 온 기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회의실 문 너머로 소위에서 논의할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 의사봉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전화를 하며 어디론가 걸어나갔다.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광경이지만 모여있던 기자들을 당황시킨 건 밖으로 뛰어나온 강 위원장의 더 당황한 얼굴이었다. 강 위원장이 복도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최재성, 김관영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연달아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30분이 지나도록 소위는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개회 한 시간 만에 정회를 선언했다.
#2. 지난 23일 오후 5시경. 24일 오전 10시 같은 장소에서 예정돼 있는 기재위 경제재정법안심사소위원회(경제재정소위)가 원래 일정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퇴근시간이 다 되도록 국회 기재위 홈페이지에 소위 일정이 공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위에서 논의할 안건이 정해지지 않으면서 심사자료 작성시간 부족을 이유로 오후 2시로 미뤄진다는 관측과 아예 열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엇갈렸다.
경제재정소위원장인 윤호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서는 "예정대로 10시에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조금 넘어 기재위 행정실은 소위가 취소됐다는 공지 문자를 돌렸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지난달 24일과 지난 7일 주례회동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안과 연말정산 보완대책을 반영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4월 임시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2월 임시국회에서 본회의 표결까지 올라갔다 부결된 'CCTV의무화' 방안을 담은 영육아보육법 개정안을 빼면 여야가 4월국회에서 처리키로 합의한 건 사실상 이 두건이 전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두 법안을 상정해 논의해야 할 기재위 조세소위와 경제재정소위가 나란히 멈춰섰다.
당초 기재위는 소득세법을 논의할 조세소위를 22일과 27일,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논의할 경제재정소위를 24일과 28일 개최한다는 계획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이들 법안은 이틀씩 소위 심사를 거쳐 29일 기재위 전체회의를 통과하게 돼 있었지만 이제 법안을 논의할 시간은 하루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는 '의사일정'에 대한 이견이다.
조세소위에서는 연말정산 보완책으로 여야 의원들이 각각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 등 8건의 법안과 그동안 소위에서 계류 중이던 법안 13건이 함께 상정됐다.
야당에서는 조세소위에서 연말정산 관련 법안만 상정해 집중논의키로 약속해놓고 소위원장이 임의로 이와 무관한 정부안을 일괄상정했다며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여당은 지난해 이미 여야논의를 마친 법안들이라 의례적으로 일괄상정한 것일 뿐, 이와 관계없이 연말정산 관련 내용만 논의하면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경제재정소위는 아예 소위에서 논의할 안건을 정하는 과정부터 진통을 겪었다. 야당 일부 의원들이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안만 '원포인트'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여당에선 펄쩍 뛰었다. 계류된 법이 한 두 건이 아닌데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 소위원장 권한으로 밀린 법안들을 다 상정키로 가닥이 잡히는 듯 했으나 결국 사회적경제기본법 '여야 미합의'라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논의가 무산됐다.
소위에 상정할 안건은 통상 여야 합의를 통해 소위원장이 결정한다. 상정한 안건을 반드시 논의할 필요는 없는 게 사실이다. 의사일정을 놓고 벌인 기싸움은 '구색맞추기'인 셈. 결국 속내는 소위에서 어떤 실리를 챙길 것이냐다.
야당은 연말정산 후속책을 논의하되 사태의 책임이 정부여당에게 있음을 강조하고 싶어한다. "정부안 말고도 그동안 합의를 거의 이뤘던 우리(야당) 의원안도 많은 데 그건 왜 상정안하냐"는 불만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합의'를 해주는 대신 내심 법인세 정상화 문제를 끌어들일 방안도 찾고 있다.
반면 여당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앞장서긴 했지만 사회적경제기본법만 덥석 처리해주기가 떨떠름하다. 같은 소위에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안의 경우 2년이 넘게 논의가 되지 않고 있는 것과 대조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국가재정법, 사회적 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등 여당 관심법안 정도는 주고받아야 한단 입장이다.
게다가 야당은 지난해 연말부터 세법심사와 예산부수법안 통과 과정에서 여당이 독단적으로 처리한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당은 1년째 KIC(한국투자공사)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야당이 불편하다. 정치적 '셈법' 외에 서로 풀리지 않은 앙금도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