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점심 먹을 때 절대로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면 낮잠을 못 자고 오후 내내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故)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전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는 항상 낮잠을 잤다. 대통령 재임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아침에 썩 일찍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일찍 깨우면 불평을 했다. 참모가 "내일 아침 7시30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간부가 브리핑을 할 예정"이라고 하자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그 친구,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하겠군."
그는 1981년 대통령에 취임할 때 이미 우리 나이로 71세였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었다. 나이 탓에 기력이 쇠해진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레이건 전 대통령이 늦잠에 낮잠까지 잔 게 꼭 나이 때문 만은 아니었다.
그는 주로 밤에 '정치'를 했다. 당시 소련과의 냉전을 끝내기 위해 국방예산을 대폭 늘리고, 경기회복을 위해 감세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밤마다 의원들을 설득했다. 전화를 하기도 하고, 백악관으로 초청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도 했다. 노구(老軀)를 이끌고 밤마다 의회 설득 작업을 했으니 늦잠에 낮잠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적당한 거래를 통해 의회를 관리했다면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의원들을 1대1로 접촉해 진심으로 호소했다. 그런 노력은 결실을 거뒀다. 냉전은 종식됐고 경제는 회복됐다. 막대한 재정적자 등 적잖은 과오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전 대통령이 오늘날까지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로 칭송받는 이유다.
현직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레이건 전 대통령의 이런 스타일을 벤치마크했다. 2009년 소냐 소토마이어 대법관 지명 인준 과정에서 의회 사법위원회 모든 소속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한 게 대표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까지 하원의원 435명 가운데 320명, 상원의원 100명 중 80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이들은 모두 배석자없이 1대1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다.
상원의회 의장을 겸하고 있는 존 바이든 부통령도 가급적 의회 건물에서 식사나 운동을 하며 의원들과 일상적인 스킨십을 시도한다. 램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도 백악관 비서실장 시절 비슷한 방식으로 의원들을 찾아다녔다.
백악관의 이런 노력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의회는 대개 '여소야대'(與小野大)였다. 대통령 임기 중반마다 실시되는 중간선거에서 유권자들의 '견제심리'가 작동한 면이 컸다. 야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행정부가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니 '고육지책'으로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 밖에 없다.
집권여당이 의회 다수당이 아닌 경우를 정치학에서는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라고 부른다. 반대의 경우는 '단점정부'(Unified Government)다. 우리나라는 1987년 개헌 이후 노태우, 김대중 정부 시절과 노무현 정부 초기 등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여당이 다수당인 '단점정부'였다.
지금은 어떨까? 새누리당 160석에 새정치민주연합 130석이니 표면적으론 '여대야소'(與大野小)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도 그럴까?
국회에 시행령 수정요구권을 부여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서 재표결이 이뤄진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박 대통령의 의중대로 '반대'표를 던질 범 친박계 의원들을 좁은 의미의 '여'(與)라고 본다면 과연 이들이 절반을 넘을까?
새정치연합 소속 의원 130명 전원이 '찬성'이라고 가정할 때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 21명만 '찬성'표를 던져도 '찬성'이 절반을 넘는다. 최근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청와대와 각을 세우고 있는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와 친이계 의원 등을 합치면 '찬성'이 절반을 넘을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진정한 의미의 '여'라고 할 수 있는 쪽은 소수에 그치는 셈이다.
물론 재의결되려면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한 만큼 찬성이 '절반'을 넘는지 여부는 의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청와대와 국회가 극한의 충돌을 벌이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은 실질적인 의미의 여야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만약 현재 구도가 사실상 '여소야대'에 가깝다면 박 대통령은 국회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심지어 '여대야소'에서도 정부발의 법안의 처리가 쉽지 않다. 하물며 실질적인 '여소야대' 국면에선 오죽하랴.
'여소야대'의 문제를 의원들과의 1대1 대화로 풀어낸 레이건·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을 박 대통령에게서도 기대한다면 과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