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53·경남 김해을)이 3일 "실력과 깊이를 갖춘 김태호로 다시 서도록 공부하겠다"며 내년 4월에 있을 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비어가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며 "20년 동안 정치를 했는데 주변에서 더 실력과 깊이를 갖춰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부터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불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그는 정계은퇴 선언은 아니라며 최고위원직은 유지하기로 했다.
그는 지난해 7월 당 지도부 입성 뒤 '최고위원직 사퇴'로 인한 파문, '유승민 사태 정국' 당시 막말 논란 등 '돌출 행동'으로 도마위에 오른바 있다. '차기 대권주자'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모습과 아울러 개인적인 쇄신의 계기가 절실했다는 점이 이번 불출마선언의 배경이라는 관측이다.
김 최고위원도 불출마 선언이 개인적 선택이라고 강조했지만,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나온 그의 결정은 의도와 상관없이 정치권에 영향을 미칠수 밖에 없다.
우선 새누리당 텃밭인 영남권에서 나온 두 번째 불출마 선언이라 영남 지역의 현역 의원들부터 압박을 느낄 것이란 분석이다. 앞서 지난 2월 이한구 의원(70·대구 수성구갑)은 영남권 의원 중 최초로 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최고위원의 불출마가 정치혁신의 물꼬로 작동할 경우, 정치적 파장은 영남권을 넘어 전국구로 확대될 수 있다. 김무성 당 대표가 앞장서서 오픈프라이머리(국민완전경선제)를 내세우며 정치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속도가 더딘 상황에서 불출마 선언에 따른 '물갈이'가 총선 승리의 상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불출마 선언의 대상은 고령·다선 의원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기득권 내려놓기'를 통해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새누리당은 공천혁신이나 불출마 선언에서 앞서갔다. 권력을 계속 획득해온 여당은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나중에 자신에게 돌아올 파이가 (야당에 비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총선 불출마 선언은 총선 판도 자체를 흔들며 영향력을 끼쳤다. 18대 국회 당시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과 박근혜 정부 정무수석으로 활동 중인 현기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대통령의 친형이었던 이 전 부의장은 "당의 쇄신과 화합에 밑거름이 되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불출마 선언은 보좌관의 금품 수수 혐의에 따른 것이지만 이후 여당의 총선 및 대선 승리를 위해선 당 중진들이 불출마를 결심해야 한다는 '용퇴론' 목소리가 커졌다.
18대 국회에서 친박(親박근혜)계 핵심이었던 현 수석은 2011년 박근혜 전 대표가 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선임된 다음 날 불출마를 선언했다. "총선 불출마가 박 위원장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밝혔던 현 의원의 불출마는 당 내 주류로 부상한 친박계에 대한 자발적인 쇄신 요구로 이어졌다. 17대 총선을 앞두고는 '차떼기 정당' 오명을 벗겠다는 명분으로 한나라당 중진 26명이 대거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많은 경우 '불출마 선언'은 그 자체가 다음 단계의 도약을 위한 1보 후퇴, 혹은 거시적 정치 구도를 염두에 둔 정치행위였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지난 2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며 차기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표의 결정은 혁신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읽혔으나 대권 도전을 위한 꼼수로 비판받기도 했다. 김상곤 새정치연합 혁신위원장 역시 "혁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지난 6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총선 불출마가 정치 인생의 도약대가 된 케이스다. 16대 국회의원 시절 이른바 '오세훈법'이라고 불리는 정치자금법을 통과시킨 뒤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총선 불출마로 '깨끗한 정치인' 이미지를 확보한 오 전 시장은 정치권을 잠시 떠났다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현실적으로 '정치의 벽'을 실감하거나, 정치 행위 자체에 더이상의 흥미를 느끼지 못해 정치권을 아예 떠난 의원들도 없지 않았다. 18대 국회에서 비례의원이었던 이성남 민주당(현 새정치연합) 의원은 "지역구 의원에 잘 맞는 분이 계실 것"이라며 출마를 포기했고 국방부 장관 출신이었던 김장수 한나라당 의원(현 중국 대사)은 "국회의원은 한번으로 족하다"며 불출마 선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