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석 174인 중 찬성 92인, 반대 39인, 기권 43인으로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지난 19대 총선을 불과 40여일 앞뒀던 2012년 2월27일 국회 본회의장. 홍재형 국회 부의장이 총선 선거구 획정안이 포함된 공직자선거법 개정안 가결을 알렸다. 찬성 의원수는 가결 기준인 참석 의원 과반 88명 보다 불과 4명 많았다.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지역구 의석수를 244~249석에서 결정하기로 하고 의석수가 줄어드는 농어촌 의원들이 집단 반발에 나서면서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 과정에 '가시밭길'이 예고됐다. 비교적 지역구 조정이 적었던 지난 총선 때도 간발의 차로 본회의를 통과해 이번엔 본회의 부결 등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22일 국회 등에 따르면 지난 19대 총선 선거구 획정 때는 3개 지역구가 늘어나고 통폐합 과정에서 2석이 줄었다. 이와 함께 2개 선거구간의 기초 시군구 조정이 있었고, 용인시 기흥구 등 7개 지역구는 경계조정을 통해 인구 기준을 맞췄다.
이번에는 조정폭이 훨씬 크다. 획정위 초안에 따르면 인구 하한 미달로 통폐합 대상인 지역구가 22~27개, 상한 초과로 분구대상인 지역구만 35~38개에 이른다. 조정 과정에서 도시 지역은 8~12개 지역구가 늘어나는 대신 농어촌은 4~8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얼핏봐도 19대의 몇배 수준의 지역구 조정이 필요하다.
당장 지역구가 줄어드는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면적과 행정단위 수에 비해 인구수가 적은 농어촌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해 농어촌특별 지역구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도 당 차원에서 이들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현재 54명인 비례대표를 축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야와 획정위가 300명 유지로 가닥을 잡은 상황에서 비례대표를 줄이지 않을 경우 농어촌 지역구 축소를 막을 방법이 없다.
올해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여야가 선거구 획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이전보다 줄었다. 지난 총선까지는 획정위가 낸 안을 토대로 국회 정개특위에서 최종 획정안을 마련했지만 이번에는 획정위 안을 정개특위가 수정할 수 없다. 정개특위는 거부권을 1회 행사할 수 있고 거부 후 10일 내에 획정위가 두번째 안을 제출하면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된다. 본회의 상정 때도 수정법안 등 상정을 금지해 획정위안에 대한 가, 부 표결만 하게 돼 있다. 전체적으로 획정위의 독립성을 높이고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인 것이다.
여야가 아예 획정위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여야가 쟁점 사안들에 대해 합의하고 필요한 법안 개정을 할 경우 획정위가 해당 내용을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획정위가 안을 내놓기까지 시간이 촉박해 그 전에 여야가 합의점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획정위는 오는 10월13일까지 단일 획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여야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획정위 안이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에는 부결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이번 보다 지역구 조정이 적었던 19대 총선 때도 아슬아슬하게 가결됐던 사례나 농어촌 의원들의 현재 기류 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라는 지적이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당 국정감사 대책회의에 참석해 "선거구 인구편차가 3:1이었을 때도 마지막 데드라인까지 갔는데, (이번엔) 2:1로 바뀌어 (농어촌을 중심으로) 많은 의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본회의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획정위 안이 본회의에서 부결 됐을 경우에는 혼란이 불가피하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획정위안을 부결시켰다는 비판이 불가피하고, 새로운 획정안도 만들어야 한다. 특히 현행 공직선거법상에는 획정위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됐을 경우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규정돼 있지 않다. 부결 후 새로운 안을 획정위에서 다시 만들지, 정개특위에서 만들지도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획정위 관계자는 "본회의 부결 후에 어떻게 할지는 입법 공백으로 보인다"면서 "입법 취지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이후 절차에 대해선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본회의에서 부결시킬 경우 여야 의원 모두 부담이 크다"며 "본회의에 안건이 올라오기 전에 여야가 쟁점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