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주변을 포함한 여의도는 고층빌딩, 아파트, 녹지가 어우러져 '한국의 맨해튼'으로 불리지만 40년 전엔 어땠을까.
양과 말을 치던 산, 그래서 양말산으로 불리던 여의도 서쪽 구릉을 깎아내고 국회를 지은지 올해로 40년이다. 국회가 최근 공개한 희귀사진을 보면 뽕나무밭이 바다가 됐다는 뜻의 '상전벽해'란 말이 실감난다.
◇돔지붕, 애초 설계엔 없었다?공보처가 항공촬영한 사진을 보면 의사당 건설 당시 돔지붕은 지금의 청록색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의사당 건물 위에 UFO가 착륙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이야 '국회의사당'하면 돔지붕부터 떠올리지만 초기 설계엔 돔이 아예 없었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은 60억원을 투입, 국회의사당 신축을 지시했다. 경제개발계획처럼 5개년 계획이었다. 전문가들이 외국사례, 경복궁 등 전통 건축물을 참고해 설계원칙을 정했는데 △남북통일 대비 △양원제 실시 가능(2개의 본회의장) △민주주의 상징하는 역사적 건물 △국내 기술진으로 시공 등이다.
이에 따라 마련된 초기 설계안에 대해 일부에서 웅장한 맛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국회의원, 장관, 교수들로 이뤄진 건립위원회가 돔 추가를 결정했다.
돔 자체의 무게만 1000톤이고, 이런 무게를 지붕 위에 올리는 공사는 국내 최초였다. 국내에 관련 기술이 부족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프로그램을 통해 하중분산설계 모의실험도 했다.
◇국회를 비추는 연못 있었다면
설계 확정 과정에서 검토된 흥미로운 설계안들이 적잖다. 지금의 의사당 정면 잔디밭이 연못이 될 뻔했다.
1966년부터 마련된 설계시안엔 의사당이 비치는 연못, 즉 반사못(relecting pool)이 있다. 조감도 속 의사당도 연못에 모습이 비친다.
연못을 왜 넣었는지, 검토과정에서 왜 제외됐는지 확인하긴 어렵다. 해외사례를 참고해 연못을 검토한 걸로 추정된다. 국회 관계자는 "설계 초기 여러 방안 가운데 연못도 있었고 채택되진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리플렉팅풀은 미국 워싱턴 링컨기념관에서 조형물 오벨리스크를 비추는 것이 대표적이다.
의원회관을 고층빌딩으로 구상한 그림도 눈에 띈다. 이와 달리 의원회관을 소형 아파트 여러채와 같은 모습으로 만든 설계안도 남아 있다.
한편 실제 건축에는 국내기술진으로 지어야 한다는 등 민족성을 강조했던 분위기가 녹아들었다. 당시까지 건재했던 조선총독부 건물(지금의 경복궁 광화문 자리)보다는 높아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반영한 것도 이런 측면이다. 결국 국회의사당 본건물(본청)은 당초 설계보다 1개 층이 높게 지어졌다.
◇허허벌판…출출할 땐 영등포로
여의도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장이었다고 한다. 광복후 미군의 공군기지로 사용됐지만 주거지나 도시기능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의도 발전의 계기는 의사당 건립이었다. 여의도 주변에 제방(윤중제)을 쌓고서야 여의도가 점차 도시화됐다. 각종 사진에서도 확인되듯 당시엔 허허벌판에 의사당(지금의 본청)만 덩그러니 서 있다.
국회 자료에 따르면 1975년 여의도 국회가 업무를 시작할 때 버스노선은 2개 뿐이었다. 변변히 매점이 없어 간식거리라도 사려면 영등포까지 가야 했다. 지금 여의도에서 떡볶이를 파는 곳이 없어 영등포까지 나가야 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만큼 여의도는 황량한 땅이었다.
마침내 1975년 8월15일 의사당 준공식을 가졌다. '여의도동 1번지'(의사당대로 1)는 그렇게 탄생했다. 1970년 1차 골조공사는 대림산업이 맡았다. 2차 골조는 현대건설이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