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전 오늘…北김일성, 남북회담 앞두고 급사하다

박성대 기자
2016.07.08 05:57

[역사 속 오늘] 김일성 북한 국가주석 1994년 7월 8일 사망

지난 4월 14일 김일성 104회 생일을 맞아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김일성 생일 경축 중앙보고대회./사진=뉴시스

1994년 6월 전쟁 일촉즉발까지 갔던 남·북한은 7월 들어 외교 협상 국면으로 급전환된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이후 성사된 첫 남북정상회담이 같은 달 25일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7월 9일 낮 12시 북한의 조선중앙방송 등 주요 언론들이 갑자기 특별방송을 시작했다. 화면에 등장한 아나운서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수령님께서 심장혈관의 동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다가 겹쌓이는 과로로 인해 7일 심근경색이 발생했고 심장쇼크가 합병돼 모든 치료를 다했으나 심장쇼크가 악화돼 8일 오전 2시 사망하셨습니다"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세계에 알린다.

22년 전 오늘(1994년 7월 8일) 북한의 절대권력자 김일성 국가주석이 82세의 일기로 사망한 것. 1912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난 그는 1931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항일 투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다가 1945년 소련군과 함께 북에 진주해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초대 수상에 취임한다. 36세의 나이로 북한의 최고 통치자의 지휘에 오른 것이다. 김일성의 46년 북한 통치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는 1950년 소련의 스탈린을 설득해 한국전쟁을 일으켜 빠른 속도로 남하했지만 국군과 UN군의 반격을 받고 물러난다. 패전 직전까지 몰린 그는 결국 중국공산당 지원군의 도움으로 휴전을 하고 한반도 북쪽을 지배하게 된다.

김일성은 휴전 이후 자신의 정적이던 박헌영 등을 제거하면서 반대파를 전부 숙청해버린다. 이어 1972년 사회주의헌법을 제정해 국가주석직을 만들어 1인 독재 체제를 확립해 절대권력자로 군림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재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된다.

1989년 베를린 장벽,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김일성은 공산주의의 한계를 느끼면서 무역 개방과 남북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남북 관계는 다시 냉각기에 접어들고 첫 남북 정상회담은 6년 뒤로 미뤄지게 된다.

김일성의 사망 이후 북한 권력은 그의 아들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잇는다. 사후 그는 북한에서 1998년 개정된 김일성헌법을 통해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된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 그를 부를 때는 '어버이 수령님' '아버지 장군님'으로 호칭해야 한다. 김일성의 주검은 방부 처리 후 금수산기념궁전에 있는 유리관에 안치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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