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준 국무조정실장 등 정부 관계자들은 16일 여야를 막론하고 제기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요청을 사실상 거부했다. 현 시점에서 정부가 할 일은 피해자 지원이라는 입장이다.
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이하 특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가습기살균제 피해 관련 기관보고 첫날 일정으로 국무조정실과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에 대한 현안질의를 진행했다.
가습기피해를 미연에 방지 하지 못한 정부가 피해자들과 국민들에게 우선 사과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기관보고 시작과 함께 여야 의원들에 의해 제기됐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기업이 불량제품을 내놓아선 안 될 의무가 있듯이 국가도 위험을 관리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가습기살균제 탄생과 확산을 막지 못했으면서도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부처를 보지 못했다"며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숙고해 달라"고 말했다.
특위 위원장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내가 잘못했다고 자책하고 다음단계로 넘어가겠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아무도 없다. '내 책임은 아닌데, 안됐다. 위로한다' 이런 것이 정부 자세는 안 된다"며 "사과도 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겠다는 정부 태도는 정말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김성원 새누리당 의원은 "(가습기살균제가 유통되던) 당시에 제도나 기술이 부족했다는 (정부 입장에) 동의는 하지만 (지금 특위가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다"라며 "도의적 책임으로 사과를 해줘야 피해자 지원대책, 재발방지 대책 등 17년 묶여져 왔던 매듭을 풀 수 있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은 "도의적으로 일정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이 시점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피해자 지원"이라며 "국무조정실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사실상 사과요구를 거부했다.
김성원 의원이 "법적 책임 때문에 (사과를 하지) 못하느냐, 악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이 실장의 입장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국무조정실장이 사과하기 어려우면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사과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이석준 실장이 말한 범주를 벗어나기 (사과의사 등을 표현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은 "결국 (정부의 이런 태도로) 정부가 아무리 재정적 지원을 해도 피해자들의 응어리를 풀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고, 우원식 위원장은 "정부 태도를 보면 피해자들이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 다시 한 번 느낀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 지원과 재발방지를 위해 기금조성과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은 "국내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 소비자들을 만만히 보는 이유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어서다"며 "구상 청구만으로 늘어나는 피해자들에게 다양한 지원하기 어렵다. 기금 조성 등으로 정부가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국무조정실장은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은 다양한 시각이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국회에서 논의해달라"며 "인과관계 증명 어려운 (피해자 지원) 부분이 있어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이 일정 규모 돈을 출연해 기금을 만드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겠다"고 답했다.
가습기살균제 주 원료인 PHMG의 흡입독성을 발견하지 못한 것과 관련, 당시 법·제도가 미비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그동안의 정부 해명이 거짓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PHMG에 대한 1997년 기술검토결과보고서를 보면 PHMG는 '물에 20%희석시켜 분무형태로 사용하는 것'으로 돼 있다. 환경부가 PHMG가 분무형태로 노출되면 호흡기계통으로 흡입돼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며 "제도가 미비해서 피해를 막을 수 없었다는 환경부 해명은 거짓"이라고 말했다.
한편, 특위는 이날 국무조정실·산업부·환경부에 이어 17일에는 보건복지부·공정거래위원회·식품의약품안전처, 18일에는 기획재정부·법무부·고용노동부로부터 기관보고를 받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