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개헌'에 하루만에 꺼진 개헌 엔진

김태은 기자
2016.10.25 13:30

[the300]정치권, "개헌보다 최순실 의혹 조사"…非文지대, 개헌 불씨 살릴까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7년도 정부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2016.10.24/뉴스1 <저작권자 &#169;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근혜 대통령이 쏘아올린 개헌이 하루도 못돼 동력을 상실하는 형국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국정농단, 국기문란 사태로 비화되면서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 자체가 '최순실 개헌'으로 명분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은 25일 일제히 박 대통령을 향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 대한 진실을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JTBC 보도에서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사전 열람은 물론 인사자료까지 받아본 것으로 드러나자 박 대통령이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을 방관했다는 의혹이 거세졌다.

이 같은 의혹은 박 대통령이 전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전격 선언한 배경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져 "개헌보다 '최순실 게이트' 조사가 먼저"라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당장 여당인 새누리당부터 개헌 논의 준비 대신 '최순실 의혹 해명' 수습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조차 개헌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최순실 의혹'에 공세의 초점을 맞추며 "박 대통령은 개헌 논의에서 빠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눈덩이처럼 터져나오는 최순실 게이트를 덮으려는 순실개헌이자 지지도가 바닥에 떨어진 정권의 교체를 피하려는 정권연장 음모로 나온 개헌을 국민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한다고 하지만 최순실씨가 도망쳐버렸기 때문에 개헌안도 누가 수정을 해주겠느냐. 최순실 없는 개헌안은 제안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헌 논의를 일축했다.

개헌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전향적 자세를 환영했던 대선주자들도 '대통령발 개헌'에서는 일단 발을 빼는 분위기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이날 "진실이 모두 밝혀 질때까지 정치권은 개헌논의를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진실규명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경필 지사는 전날 개헌 추진을 결단한 박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권력구조 개편에 치중된 개헌 방향과 임기 내 헌법개정을 못박은 점을 경계했다.

"개헌은 제7공화국의 필요 조건"이라고 원론적 찬성 입장을 보였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주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헌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기득권층 비리를 덮으려는 정치적 술수로 활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반대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전날밤 늦게 보도자료를 내고 "대통령이 갑자기 개헌 연설을 하니 어리둥절하다"며 "대한민국의 근본 뼈대인 헌법을 고치려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국가의 위기 상황과 국민의 고통을 살피면서 발언해 주면 좋겠다"며 박 대통령의 제안 자체를 무시했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의혹 규명과는 별개로 정치권 수면 위로 떠오른 개헌 논의를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측근 비리가 불거진 것을 계기로 오히려 개헌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확산시켜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개헌 불씨를 살려가고자 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분권형 개헌 논의를 통해 대선구도의 유동성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새누리당에서는 친박(친박근혜)계를 중심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내세운 분권형 개헌에 여전히 미련을 갖고 있고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 역시 분권형 혹은 내각제 개헌에 적극적이다.

야권에서는 차기 경쟁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배제하고자 하는 '비문(비문재인) 지대'에서 개헌 논의의 동력을 끌어가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더불어민주당 내 비주류는 물론 국민의당도 "국민 다수가 개헌에 공감하고 있는데 문재인 전 대표는 사실상 개헌을 반대하는 것"이라며 개헌을 통한 '문재인 끌어내리기'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촉발한 '개헌 블랙홀'이 '최순실 개헌'으로 변질되면서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개헌 논의 자체가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크다. 더구나 문재인·안철수·유승민 등 여야 유력 주자들이 대선 전 개헌 추진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개헌 동력을 얻기 힘들다는 분석도 나온다.

새누리당의 한 친박계 의원은 "'최순실 의혹'과 별개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개헌 논의를 지속해야 한다"면서도 "대통령이 개헌을 밀고가기 어려운 상황이 됐고 개헌이 대통령과 계속 결부되면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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