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끝낸 여의도는 그야말로 ‘혁신위원회 전성시대’다. 내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몸 풀기를 시작했다는 의미다. '체질개선'(더불어민주당) '신보수주의'(자유한국당) '당 생존'(국민의당) 등 각당이 내건 ‘혁신’의 명분과 목표는 다르다. 처한 환경과 여건이 제각각인 탓이다. 다만 대선에서 이겼든, 졌든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같다.
하지만 혁신위를 바라보는 정치권 안팎의 시각은 곱지 않다. ‘혁신’보다 ‘잡음’만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표면적으로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당 체질 개선'을 내세웠다. 실제 내부에선 지방선거 공천권 행사 문제를 놓고 신경전, 탐색전이 치열하다. 공천룰을 두고 갈등을 빚었던 2년전 혁신위를 떠올리게 한다.
2015년 2월 전당대회 때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던 문재인 대통령은 4.29 재보선 패배 후 책임론에 직면했다. 당분열 조짐과 혼란이 거듭되자 당시 문 대표는 혁신위 카드를 꺼냈다. 김상곤 혁신위원장(현 교육부 장관) 주도의 혁신위가 탄생했는데 혁신 노력 못지않게 친문(친문재인)과 반문(반문재인) 그룹 간 주도권 싸움도 드러났다. 문 대통령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갈등을 빚어 결별한 출발선상도 혁신위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당내에서 '새정치'를 상징했던 안철수 전 대표와 김상곤 위원장이 혁신안을 놓고 충돌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한국당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혁신위를 발족하고 신보수주의를 선언했을 뿐 구체적 혁신이 없다. '친박'(친박근혜) 청산을 놓고 한걸음도 내딛지 못한다. 최근 내놓은 혁신안에는 친박 핵심 인사에 대한 인적 청산 문제 계획이 담기지 않았다. 당내 갈등 소지가 큰 인적 청산 등 예민한 문제는 뒤로 미루겠다는 것인데, 혁신의 길이 멀어보인다. 향후 혁신위가 내놓을 공천 기준이 당내 갈등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국당의 보수텃밭인 영남에선 벌써부터 친박 대 친홍(친홍준표) 대결구도가 형성된 모양새다.
3년전 새누리당 시절의 '김문수 혁신위'도 내부 반발만 키우는데 그쳤다. 국회의원 세비 동결 등 의욕적으로 혁신안을 내놨지만 당내 반발에 부딪혀 진통을 겪었다. 당시 내부에선 "혁신위가 특정인의 대권 행보를 위한 실적쌓기용"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면서 비장의 카드로 내놓은 국민공천제 혁신안은 정치권에 갈등만 일으킨 채 물거품이 됐다.
국민의당은 혁신위 출발부터 체면을 구겼다. 혁신위에서 지도부 체제 혁신안을 내놨지만 당내 반발에 일부 반영되는 선에 그쳤다. 첫 혁신안이 어그러지면서 추후 내놓을 혁신안이 당내에서 수용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더욱이 안 전 대표의 당권 도전으로 그동안 논의됐던 혁신안마저도 관심 밖이다.
이처럼 혹시나 하며 기대하지만 역시나로 끝난 게 혁신위의 경험이다. ‘혁신’을 내세웠다가 결국 당내 정치, 당내 갈등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의 한계다. 혁신위의 흑역사는 매번 되풀이된다. 그래도 이번에 다르지 않을까, 속을 것을 알면서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