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반도체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 국회사무처 법제실에 입안을 의뢰했다가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반도체 드라이브'를 지원사격하는 차원에서 관련 시설과 인프라를 정부가 직접 투자하는 대신 일종의 사용료를 받는 파격적인 법안이었으나 "부적절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특정 법안에 대해 이런 의견이 나오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통상 의원이 입안을 의뢰하면 법제실은 법률안 초안 작성에 앞서 관련 부처의 입장을 듣는데 이 과정에서 세수 감소를 우려한 기획재정부의 반대를 그대로 수용했다는 후문이다.
만약 법안에 문제가 있을 경우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단계부터 논의하면 된다. 국회사무처 맞은편 의원회관 안팎에서는 "개별 의원의 입법권을 침해한 월권행위"라는 말까지 들린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은 이른바 '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항하기 위해 2800억달러(약 363조5000억원)를 투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의회예산국은 반도체법이 시행될 경우 10년간 790억 달러(약 103조2530억)의 재정 적자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상하원은 반도체를 앞세운 '미국 우선주의'를 택했다.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첫 행선지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은 것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 구도가 기업간 경쟁에서 국가간 대결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기재부 중심의 부처 이기주의가 우선이다.
1일 여당과 8개 부처는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당정협의를 연다.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반도체 죽비'를 내린 만큼 이날 부처별 반도체 정책추진 경과보고 등이 예정됐지만 기대하는 이는 드물다.
기존에 각 부처가 발표한 내용을 재탕하거나 종합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들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반도체법에 준하는 수준(25%)의 세액공제율을 확대하자고 주장했지만 기재부의 반대로 대폭 축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이번 반도체법을 통해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투자액의 25%를 세금에서 공제해주기로 했다. 신규 반도체 시설 투자기업은 최대 30억 달러(약 3조9000억원)의 보조금도 준다. 이쯤되면 기재부의 입장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