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국회의원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우연히 상대 당 의원과 마주칠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지나가듯 "거, 요즘 너무 소리를 지르시는 것 아닌가"라고 말을 건넸다고 했다. 반박을 쏟아낼 거라 생각했던 상대는 오히려 웃으며 "저 생계형 정치인이잖아요. 다음 총선 때 재선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라고 했다고.
사실 국회에서 정치인들이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리 이상한 광경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본인의 정치적 소신을 표현하고 실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지지를 얻고 다음 선거를 통해 정치 생명을 또 한 번 연장하기 위한, 그저 '생계'를 위한 것이라는 얘기엔 뒷맛이 씁쓸하다.
실제로 요즘 '생계형 정치인'이 많아졌다는 얘기가 여의도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본인의 신념을 펼쳐보이기 보단 다음 총선에서 공천받고 한 번 더 배지를 달려고 당 지지자나 지도부의 눈치만 보는 이들 말이다. 비상계엄에 이어 탄핵 국면까지, 말 한 마디가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민감한 비상시국이 이어지기에 더욱 그럴지 모른다.
그렇다고 정치인이 자신의 신념을 감추고 당 지지자들의 귀에 달콤하게 들릴 말만 쏟아내는 게 과연 국민의 녹을 받는 국회의원의 사명일까. 정치인이 신념을 오롯이 추구할 수 없고 오히려 감춰야 하는 정치적 환경은 정치인 본인 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국가에도 건강한 것일 리 없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을 지핀 '중도보수' 논쟁은 이런 점에서 오히려 반갑게 느껴진다. 민주당이 지향해야 할 이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밝힌 것이란 점에서다. 진보 진영의 최대 플랫폼으로서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녹아있는 민주당에서 이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 건 당연한 일이고, 어쩌면 장려할 일이다. 일각에선 대선용 말 바꾸기라고 비판하지만, 그게 진심인지 여부는 말이 아닌 앞으로의 행보가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를 "열정과 균형 감각을 갖고 두꺼운 널빤지를 강하게, 서서히 뚫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을 바꾸는 건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이다. 확고한 신념과 책임감 없인 해내기 어렵다. 스스로 이것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건 이 대표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