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87 헌법, 오래돼서 바꾸자는 게 아니다

안재용 기자
2025.04.09 05:16

[the300]

"제왕적 대통령제만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무소불위의 국회도 문제입니다. 진정한 삼권분립을 이루기 위한 개헌(헌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선고를 지켜본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이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한 말이다. 헌정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이른바 '87체제'를 끝내고 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87체제가 시대에 맞지 않다는 주장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선 개헌 논의와 다른 점은 국회의 권한을 견제할 수단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제왕적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지나치게 큰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다수였는데 21~22대 국회를 거치며 국회를 견제할 제도적 수단 또한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었다.

일각에서는 87체제가 비대한 대통령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설계돼 국회가 독주하는 경우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국회 해산권이다. 대통령이 함부로 국회를 해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는 1987년 9차 개헌 당시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삭제했다. 국회는 탄핵소추를 통해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어려운 구조를 만든 것이다.

대통령이 강하고 국회가 약하던 시절에는 이같은 구조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권위주의가 점차 해소되고 민주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국회 내 여러 관행을 통해 87체제의 허점을 메웠다. 다수당이 국회의장을 맡으면 이를 견제할 수 있도록 의석수가 두번째로 많은 당이 법제사법위원장을 맡는다는 게 좋은 예다.

21~22대 국회 들어 정쟁이 격화되며 이같은 관행들은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가 돼 버리고 말았다. 여야는 '법에 쓰여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서로를 대했다. 토론과 합의 없는 다수결과 거부권 행사, 공직자에 대한 무분별한 탄핵소추를 거쳐 비상계엄 선포까지 치달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6일 "승자독식의 위험을 제거하고 삼권분립의 기둥을 더 튼튼하게 세우는" 개헌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달라진 정치 지형에 맞게 어제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개헌 논의가 진행되길 기대한다.

안재용 기자 /사진=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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