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가 지난달 30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조희대 대법원장으로 시작해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을 거쳐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으로 끝난 국감이었다. 욕설과 고성, 인신공격이 국감을 지배하면서 '정책'보다는 '정쟁'만 남은 3주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13일 시작해 25일간 17개 상임위원회서 총 834개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된 올해 국감은 '정책 실종'의 전형이었다. 여야는 각자 정권의 흠집 내기에 집중했고 경제·복지·안보 등 민생 이슈는 뒷전으로 밀렸다.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역대 최악의 저질 국감"이라며 F 학점을 부여했다. 지난해 D, 재작년 C였다. 해마다 나빠지는 성적표는 국회 스스로의 자화상이다.
국감 초반 최대 이슈는 법제사법위원회의 조희대 대법원장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 여부였다. 조 대법원장은 "재판을 이유로 법관을 증언대에 세우는 상황이 생긴다면 법관들이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것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하며 증언 요구를 거부했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책임 회피"라고 공격했고 국민의힘 "삼권분립 파괴"라며 맞섰다.
여야는 시종일관 감사의 핵심 사안보다는 정쟁에 더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을 두고 벌인 공방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은 김 실장에 대해 "대통령실의 숨은 실세"라며 증인 채택을 요구했고 민주당은 이를 "사실무근 정치공세"라고 받아쳤다. 오는 6일 대통령실에 대한 운영위원회 국정감사가 남아있지만 여야 간 합의가 불발되면서 김 실장은 결국 출석하지 않을 전망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시선은 최민희 과방위원장으로 쏠렸다. 국감 기간 중 국회 사랑재에서 딸의 결혼식을 올리고 피감기관 관계자들로부터 축의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는 "돈은 모두 돌려줬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감 도중 비공개회의에서 자신을 비판한 MBC 보도본부장을 퇴장시키는 장면이 공개되며 최 위원장 관련 논란이 확산했다. 이를 두고 "언론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이 일었고 여야의 공방은 국감 마지막 날까지 이어졌다. 결국 최 위원장은 "과했다"고 사과했다.
올해도 국감장 곳곳에서 막말이 난무했다. 법사위에선 "너한테 반말해도 된다"(박지원 민주당 의원), "셧 더 마우스(Shut the mouth)"(서영교 민주당 의원), "서팔계서영교+저팔계)"(곽규택 국민의힘) 같은 발언이 오갔다. 과방위에선 여야 의원이 욕설이 섞인 문자를 공개하며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 이 과정에서 증인들은 질의 한 번 못 받고 수 시간 대기했다.
올해 국감은 '유튜브 국감'이기도 했다. 일부 의원들은 질의보다 카메라를 의식했다. 보좌진들은 의원의 발언 장면을 실시간 촬영해 '국감 레전드', '사자후' 같은 제목으로 올렸다. 조회수와 좋아요가 의원들의 정치적 성과가 돼버린 시점에서 국감은 국가 감시의 장이 아닌 콘텐츠 제작 현장이 됐다.
막말·고성이 오가고 파행을 거듭한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치열하게 준비한 질의를 바탕으로 피감기관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해결책까지 끌어낸 국회의원들이 적지 않았다. 이번 국감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베테랑 중진과 열정의 초선들은 누굴까.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은 지난달 13일부터 지난 30일까지 국감이 열리는 주요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장을 늦은 밤까지 지키며 의원들의 질의를 직접 보고 들은 결과를 토대로 '국감 스코어보드'를 정리했다.
정쟁에만 몰두하거나 보여주기식 호통에 치중하는 속칭 '쇼츠 국감'에 나선 이들보다 매너있게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한 의원들이 대체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독창·화제·성실성 등도 가점 요인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여야 의원들간 고성이 오간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박 의원은 품위를 지키려 노력하며 조희대 대법원장 등을 상대로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부각했다. 주 의원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북송금 사건이 조작됐다는 여당의 주장에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프레임을 전환시켰다.
단 한 번의 파행 없이 정책질의 중심으로 진행된 정무위원회 국감에선 폭넓은 소재와 다양한 문제점을 깊이 있게 추적한 이정문 민주당 의원이 만점을 받았다. 이 의원은 시종일관 소탈하면서도 진지한 질의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정무위 야당 간사인 강민국 의원은 보수정당이 재벌을 비호한다는 통념을 깨부수며 불공정 행위가 의심되는 대기업을 강도 높게 추궁하며 해법을 모색했다.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김태년 민주당 의원(5선)이 입법·예산을 넘나들며 '관록'을 과시했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규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를 짚으며 피감기관의 공감을 이끌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철저한 사전 준비로 한미 관세협상과 10·15 부동산대책 등 주요 현안을 날카롭게 파고들면서도 품격을 지켰다는 평가다.
욕설·고발로 얼룩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한민수 민주당 의원과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 등 두 초선의 활약이 돋보였다. 한 의원은 △네이버 리뷰장사 △나로호우주센터 인근 풍력발전시설 △인스타그램 음란방송 등 개선이 필요한 다양한 현안을 소개했다. 이 의원은 구글 출신의 이공계 전문가다운 수준 높은 질의를 선보이며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췄다.
캄보디아 사태가 도마에 오른 외교통일위원회에서는 4선 한정애 민주당 의원이 인접 지역으로의 범죄 확산 가능성을 부각하며 당국의 조처를 촉구했다. 김기웅 국민의힘 의원은 조현 외교부 장관의 답변과 주캄보디아대사관 대사대리의 보고 차이를 지적하며 정부 대응의 미흡함을 꼬집었다.
국방위원회에서는 12·3 비상계엄 관련 질의의 홍수 속에 황희 민주당 의원이 우리 군의 복지체계 혁신을 위한 구체적 해법을 모색하며 가장 주목받았다. 31년간 국방부 출입 기자로 활약하다 국회에 입성한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육군의 실탄 관리 문제, 드론 국산화율, 캄보디아 사태에서 군의 역할,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위험성 등 시의성 있는 질의를 다수 내놓으며 활약을 펼쳤다.
행정안전위원회에선 한병도 민주당 의원이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1877개였던 관사가 2018개까지 늘고 총 1078억원의 세금이 운영 및 관리비 등으로 쓰인 점을 지적하는 등 데이터에 입각한 객관적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세금 낭비를 파헤쳤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캄보디아 사태의 배후로 지목된 프린스그룹이 한국에서도 사무실을 운영 중이었단 사실을 밝혀내며 반향을 일으켰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는 김동아 민주당 의원이 한국수력원자력 내부 문건을 입수해 웨스팅하우스와의 원전 협상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점과 의혹들을 점검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비자 문제로 우리 국민이 미국 조지아주 이민 당국에 구금됐을 당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A1·A2 비자가 아닌 ESTA(미국전자여행허가)로 출국했음을 지적하며 절차적 문제를 꼬집었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의사이면서도 의사의 기득권을 비판하다 국회에 입성한 김윤 민주당 의원과 의료사고·산업재해 사건 변호를 주로 맡았던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김 의원은 손해보험 청구 증가에 따른 재정 악화 문제를 지적하며 실손·건강보험 심사의 연계도 강화를 주문하는 등 해결책을 함께 제시했다. 최 의원은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과 차별을 끄집어내 공감을 자아냈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체급이 커진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선 쿠팡CFS 취업규칙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김주영 민주당 의원이 최고점을 받았다. 김 의원은 이번 국감에서 쿠팡 측으로부터 일용직 근로자 처우 개선을 약속받는 등 가시적 성과를 이끌어냈다. 조지연 국민의힘 의원은 새로 맡게 된 기후·에너지 분야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을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이며 역량을 인정받았다.
국토교통위원회의 스타는 박용갑 민주당 의원이었다. 박 의원은 반복적인 정부 납품 지연으로 문제시된 철도차량 제작업체 다원시스 관련 조사를 8월부터 준비했다. 꼼꼼히 준비한 자료를 근거로 내세워 정부로부터 철도차량 입찰제도 개선 약속을 받아냈다.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은 휴게소 부실한 안전관리 문제를 부각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 직접 현장을 찾는 등 '현장형 질의'로 피감기관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