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는 우리 국민들에게 강한 '정치적 효능감'을 남겼다. 친위 군사 쿠데타를 국민들의 손으로 막아내고, 국민이 뽑은 국회가 계엄을 즉각 해제했다. 이 모습은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전무후무한 장면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군과 공무원이 부당한 지시에 맞설 수 있는 '명령 거부권' 보장도 계엄 사태가 남긴 유산이다. 정치적 효능감과 명령 거부권 모두 12.3과 같은 역사적 비극을 막을 막강한 억제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1년 전 사태의 배경이 된 제왕적 대통령제와 대결적 정치구조 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 정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헌법 또는 법률 개정에 대한 논의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물리적 충돌 없이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들은 국민들이 분명 자부심을 가질 만한 역사적 성취였다"며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정권교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당시 광장으로 나와 빛의 혁명을 이끌었던 청년들이 한 시대를 기억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용주 맥 정치사회연구소장은 "12·3 비상계엄을 저지하고 헌법을 수호한 지난 1년은 오직 위대한 국민들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비상계엄 1주년을 평가한다면) 그와 같은 국민들의 위대한 힘에 경의를 표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는 12.3 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 시점 집중해야 할 과제는 비상계엄 선포와 같은 반헌법적 조치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지"라고 말했다.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군과 공무원에 대한 명령 거부권 보장에 나섰다. 국방부는 상관이 위법한 명령을 내릴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군인사복무기본법 개정안'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국회 측에 전달했다. 국방부는 상관의 명령이 헌법과 법령의 통제 원리에 종속돼야 하며 군인에 대한 헌법 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보탰다.
인사혁신처와 행정안전부는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가공무원법 제 75조에 규정된 '복종의 의무'는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변경된다. 위법한 지휘, 감독에 대해서는 이행을 거부토록하는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근본적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탈피하고 극단적인 대결적 정치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관후 국회 입법조사처장은 "이같은 위기를 불러온 정치적 갈등, 정치 양극화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지 논의하고 합의해 나가야 한다"며 "여기엔 개헌이나 선거제도 개편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어 "권력구도나 선거제도 개편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있었지만 그 논의를 방치한 결과가 비상계엄 사태"라며 "시민사회와 국민들의 개혁에 대한 요구를 정치권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방안으론 내치에 대한 국무총리의 권한을 강화하는 책임 총리제 또는 이원집정부제 등이 거론된다. 정치 양극화 해결을 위해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을 통해 다당제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2·3 비상계엄 직후 국제사회에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그러나 한국은 대통령 탄핵과 대선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국제사회의 우려를 씻어내는데 성공했다. 위기와 회복의 지난 1년을 시간순으로 되짚어본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8분 윤석열 전 대통령은 긴급 담화를 통해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곧 공개된 계엄 포고령에는 '정치활동 금지' '언론·출판 통제' '전공의 처단' 등 차디찬 단어가 담겼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선포 소식을 접한 국회는 곧바로 비상이 걸렸다. 국회에서 퇴청한 후 저녁식사를 즐기거나 귀가한 의원들, 보좌진들에게 비상 소집령이 떨어졌다.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모여드는 사이 계엄군은 국회 본관 진입을 시도했고, 보좌진들은 이들을 몸으로 막아섰다. 국회 밖에선 시민들이 계엄군의 차량을 가로막았다. 결국 계엄군이 창문을 통해 본관에 진입, 본회의장으로 향했지만 이미 늦었다. 12월 4일 오전 1시1분,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은 국회의원 190명 참석에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윤 전 대통령은 오전 4시 20분 2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계엄 해제를 발표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는 2시간여 만에 마무리됐지만 외신은 이 사태를 긴급 타전했다. BBC, CNN, 로이터 등은 계엄령 선포를 "수십 년 만에 민주 사회에 대한 가장 큰 도전" "성급한 행동" 등으로 평가했다. 커트 캠벨 당시 미 국무부 부장관은 "심각한 우려를 갖고 최근 한국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영국, 독일 등 유럽 주요국 역시 우려와 함께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이 경제에 미친 충격도 컸다. 원/달러 환율은 계엄 당일 낮 거래 종가 1402.9원이었으나 계엄 이후 며칠 만에 1470원을 넘어섰다. 코스피지수는 계엄 전 2500 수준을 오가다가 지난해 12월9일 장중 2360.18까지 떨어졌다. 상장사 시가총액은 140조원 넘게 증발했다.
계엄이 재선포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간 영향이었다. 한국의 5년 만기 달러 표시 채권의 신용부도스와프(CDS·Credit Default Swap) 프리미엄 역시 0.32~033%를 유지하다가 올 1월에 0.404%까지 뛰었다. CDS프리미엄은 국가 부도 위험을 알리는 지표로 활용된다.
국제사회의 우려를 씻고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국회는 계엄선포 11일 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헌재는 국회 탄핵소추안이 접수된지 5개월여만인 4월4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구를 만장일치로 인용했고, 6월 대선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됐다.
추락한 국가 신뢰도를 안고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지난 6개월간 국가 정상화를 위해 숨가쁘게 달렸다. 외교 분야에서 이 대통령은 취임 12일 만에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유엔 총회,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다자외교 강행군을 펼치며 정상국가로의 복귀를 알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을 통해서는 관세 합의를 이끌어냈고, 핵추진 잠수함 도입에 대한 약속도 받았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돌아왔다. 계엄 사태 이후 5개월간 18조원을 순매도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5월~10월 21조원을 순매수하며 주가를 밀어올렸다. 덕분에 코스피 지수는 지난달 4일 장중 사상 최고치인 4226.75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2%(직전 분기 대비)였으나 2분기에 0.7%로 반등했고 3분기에는 1.2%(속보치)까지 상승했다. 한국은행은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는 0.9%에서 1.0%로, 내년은 1.6%에서 1.8%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CDS 프리미엄 역시 0.2% 수준으로 안정화됐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 등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 경제에 많은 영향을 주긴 했지만,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 이 정부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있다"며 "다만 효과가 없는 부동산 정책과 노동자 측에 치우친 노동정책 문제에 대한 우려는 여전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