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군함 파견을 사실상 요구하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정부로서는 중동 사태의 직접 개입 리스크와 함께 미국으로부터 또 다른 비관세 장벽 압박도 떠안은 격이 돼서다. 일단 정부는 관련 사항을 면밀히 살피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를 통해 "여러 국가,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미국과 함께 해협이 개방되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군함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프랑스·영국을 직접 언급하는 등 중동 사태에 개입하라는 노골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의 20% 정도가 지나는 요충지로, 가장 좁은 곳이 39km에 불과하다. 이란은 이 해협에 기뢰를 설치하며 통행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고 실제 민간 선박의 피격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통해 전쟁 대응력을 키우고 있어 미국으로선 새로운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
아직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인 파병 요청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만큼 미 행정부 차원의 공식 군함 파견 요청이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간 중동 사태의 직접 개입은 피하면서 우리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영사 안전 역할에만 집중했다. 이란 등 주요 원유 수입국과의 관계 유지와 함께 전쟁 참여에 따른 대내외적 정치 리스크를 지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군함 파견 요구로 인해 셈법이 복잡해졌다. 동맹국인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전히 미국발 관세 리스크가 유효한 상황에서 미 행정부가 제기하는 비관세 장벽에 '참전'도 추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5개국은 미국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 대상 16개국에 속해 있기도 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관련 사안에 대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언급에 주목하고 있으며, 한미 간에 긴밀하게 소통하고 신중히 검토하여 판단해 나갈 것"이라며 "우리 국민 보호와 에너지 수송으로 안전 확보를 위한 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말리아 아덴만 인근 해역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청해부대의 파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청해부대는 트럼프 1기 때인 2020년 미국-이란 간 긴장 고조에 따라 작전임무 구역을 확장해 호르무즈 해협 내 한국 상선 호위 임무를 수행한 바 있다. 당시엔 파병 동의안에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 포함'이라는 문구가 있어 별도의 비준 동의 절차없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작전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일시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이란과의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 접근법도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작전이 이뤄진다면 우리 군이 보낼 수 있는 배가 많지 않은 만큼 중동 지역에 있는 군함을 투입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설명했다.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군함 파견에 대해서는) 국익을 중심에 두고 신중하게 논의해서 결정할 것"이라며 "정부의 입장이 정해지면 당에서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원론적 입장을 전했다.
야권에서도 냉정한 판단을 요구했다. 외교관 출신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부는 주요 국가들의 대응을 면밀히 살피면서 전쟁에 직접 휘말릴 가능성은 최소화하는 임무를 중심으로 참여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며 "냉정하고 현실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상근 카이스트 미래기술환경 예측·분석센터 연구부교수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중동 사태가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미국이 동맹국에 각자의 역할을 스스로 결정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미국이 동맹의 역할을 강조하는 시험대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