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민주화로 선진 부국의 초석을 놓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문화강국이자 소프트파워로 우뚝 섰다. 6·25 전쟁의 폐허 속 원조로 생존하던 나라가 한강의 기적과 민주주의 체제 안착을 거쳐 김구 선생이 꿈꾸던 '문화의 근원이자 모범이 되는 나라'로 세번째 성공신화를 이룩한 것이다.
지난 21일 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콘서트에는 전세계 각국에서 모인 아미(Army·BTS 팬) 약 10만4000명(주최측 추산)이 운집했다. BTS가 전한 희망과 존엄, 연대의 메시지와 뜨거운 현장 열기 속에서 광화문을 배경으로 울려퍼진 아리랑은 글로벌 구독자 수 3억2500만명의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로 전파됐다.
슈가는 오프닝 무대 후 "한국의 역사적 장소인 광화문에서 무대를 할 수 있게 돼 정말 영광"이라며 "우리 정체성을 담고 싶어 앨범을 '아리랑'으로 정했고, 그 마음을 담아 광화문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BTS가 상징하는 케이팝(K-POP)은 글로벌 신드롬이자 하나의 문화 현상이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주제가상을 받아 2관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재명 대통령은 "김구 선생께서 꿈꾸셨던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는 나라'가 어느덧 현실이 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케데헌 연출자인 매기 강 감독은 "저처럼 생긴 이들에게, 이런 영화가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미안하다. 다음 세대는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이 상을 한국과 전세계 한국인에게 바치겠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K-컬처는 서구 중심 문화예술의 견고한 진입장벽을 기어코 허물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2020년 비(非)영어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최고 권위의 작품상을 받는 등 4관왕을 차지했다. 2022년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에미상 6관왕을 달성했고, 한강 작가는 2024년 한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영국 브랜드파이낸스가 발표한 '2026 글로벌 소프트 파워지수'에서 대한민국은 193개 유엔 회원국 중 11위다. '12·3 불법 비상계엄'으로 한국의 거버넌스 순위는 25위로 전년보다 5단계 하락했으나 예술·엔터테인먼트와 '영향력 있는 미디어' 부문에서 각각 전세계 7위로 떠오르며 하락폭을 상쇄했다.
브랜드파이낸스는 "문화적 영향력은 이제 하나의 '방어적 자산'으로 국가의 평판이 일시 하락해도 대중적 인지도와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며 "(한국의 순위는) K-팝·K-드라마·K-뷰티를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콘텐츠 산업의 성과 덕분"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국제사회로부터 약 127억 달러 규모의 공적개발원조(ODA)를 받았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는 당시 정부 예산 절반 규모에 달했다. 1960~70년대에는 우리 경제도 성장했지만 ODA가 여전히 정부 예산의 20%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불과 50년 만인 1995년 한국은 세계은행(WB)의 수원국 명단에서 제외됐다. 2009년에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DAC 가입은 원조를 공여하는 선진국 33개(당시 24번째)의 일원이 됐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원조 받던 최빈국이 원조하는 선진국이 된 유일한 사례다.
이 과정에선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거대한 기적이 있었다. 우리 국민은 6·25전쟁의 상흔을 딛고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연착륙시켰다. 독재로부터 평화적인 정권 교체의 길을 열며 정치적 성숙도 이뤘다. 자원 부족이라는 결정적 약점은 기술·교육에 집중 투자해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안정적인 경제와 민주적·평화적 가치에서 자란 우리 문화의 씨앗은 BTS가 상징하는 문화수출강국으로 마침내 꽃을 피웠다. BTS와 케데헌 등 K-POP이 전하는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는 한국적 가치가 전세계에 통한다는 방증이 됐다. 케데헌 '헌트릭스'의 노래를 부른 레이 아미는 최근 아카데미 레드카펫에서 "케이팝은 한국인만을 위한 것도, 아시아 공동체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한 음악"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