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만과 수교' 中압박, 러시아도 비난…달랐던 30년전 '북중러'

정한결 기자, 조성준 기자
2026.03.31 17:40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김정은 당 총비서가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쇼전쟁승리(전승절) 80돌(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사실을 4일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평양 노동신문=뉴스1)

탈냉전 직후인 1995년 북한과 중국·러시아 간 균열이 발생했다는 정황이 담긴 외교문서가 공개됐다. 한국이 중국·러시아와 수교하면서 북한의 우군이던 양국을 포섭하면서다. 북중러가 다극체제를 주장하며 밀착하는 최근 신냉전 시대의 행보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31일 외교부가 공개한 기밀해제 보고서(1995년 6월)에 따르면 당시 중국 측은 북한 측과 만나 북한·대만 관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북중 간 특수관계를 고려해 대만과의 관계를 처리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북한은 "중국과 한국이 상호 고위인사 교류를 하는데 북한이 왜 대만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냐"고 반박했다고 한다. 북한은 당시 장쩌민 중국 주석이 예정대로 한중 수교 첫 방한에 나설 경우 "대대만 관계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으며, 대만과의 외교관계 수립까지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자국과 수교하려면 대만과의 공식 외교 단절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이 대만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언급하면서 사실상 단교를 압박한 것이다. 당시 중국 측은 이는 중국에 대한 엄포에 불과하며 현실적으로 북한이 대만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장 주석의 방한 일정을 예정대로 추진했다.

북한이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을 불신하게 됐다는 정황은 이후에도 드러난다. 1995년 11월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중국 측은 한국 측에 북한이 그동안 내부사정과 향후 계획 등에 상세히 중국 측에 알려줬으나 한중 수교 이후엔 거의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북한이 중국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측은 "피상적인 이야기만 오갈 뿐 심도 있는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북한은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에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1995년 5월 19일 파벨 그라초프 러시아 국방장관의 공식 방한이 이뤄졌다. 그라초프 장관은 당시 한국을 방문해 러시아가 북한과 맺고 있던 '우호 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 중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을 폐기하거나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한국에 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한국이 제공한 경제 협력 차관(경협차관)의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이를 러시아제 무기로 대신 갚는 '현물 상환 협정'을 한국과 체결했다. 일명 '불곰사업'으로서 러시아제 최신 장비를 도입해 국산 무기 개발 등에 활용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북한은 이런 한-러 관계 발전에 따른 러시아의 '대남정책'이 한반도의 불안정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비난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러시아와 북한은 이후에도 경제·안보에서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가는 등 상호 관계 관리도 지속했다.

정부는 국민 알권리 보장과 외교 행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생산한 지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이날 외교부는 1995년에 생성된 문서 2621권, 37만쪽을 일반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종전 50주년 기념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담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방한 △김영삼 대통령 미국 방문 △아세안 등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참여 △유엔 50주년 기념 특별정상회의 등의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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