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진행된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놓고 발생한 이견으로 14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결렬되면서 해협 내부에 머무는 우리 선박 26척의 통항도 더 늦어질 전망이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12일(현지시간) 결렬되면서 호르무즈 해협 내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란은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공습을 받은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상태다.
지난 7일 이란 정부는 2주간의 휴전 기간 동안 선박 통항을 용인해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실제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14척에 그쳤으며, 이 가운데 최소 9척은 이란 국적이거나 이란과 연계된 선박인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 내에서 통과를 기다리는 선박만 2000척에 달한다. 이란은 휴전 기간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행량을 하루 최대 15척으로 제한하고 있다. 전쟁 이전 하루 140척 안팎 통항했던 것을 감안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또 선박 규모에 따라 통행료를 차등 부과한다. 약 200만배럴의 원유를 운반할 수 있는 초대형 유조선의 경우 통행료가 약 200만달러(29억 602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해협 안에 대기 중인 우리 선박은 26척, 선원은 총 173명이다. 이들 선박은 원유 운반선 9척, 석유제품운반선 8척, 벌크선 5척, LNG·LPG 운반선 2척, 컨테이너선 1척, 자동차운반선 1척 등이다.
정부에서는 선박 통항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일 외교부는 이란과 우리 선박의 통항 등을 논의하기 위해 정병하 극지협력대표를 외교장관 특사로 임명했다. 앞서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9일 세예드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과 통화에서 외교장관 특사 파견 의사를 전달했고, 이란 측은 '환영'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정 특사는 주말 사이 현지에 도착해 이란 측과의 접견 일정을 조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측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이 묶인 우리 선박의 통항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 관련 분위기도 파악해 향후 우리 정부의 대응 방향 설정을 위한 정보 활동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정부의 노력과는 별개로 우리 선박의 통항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미국과 이란 간 협상이 결렬된 상황에서 선박과 선원에 대한 100%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 선사나, 보험사도 통항을 주장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통항에 섣불리 나설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미국과 종전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우리 선박이 섣불리 해협을 나올 필요가 없다"며 "종전이 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문제"라고 밝혔다.
이란과의 개별 협상 등은 지속 추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란과는 물밑에서 협상해야 한다. 프랑스·필리핀·태국·일본 선박도 통항하고 있지 않나, 각자도생하는 상황"이라며 "지금 미국 눈치를 보는 나라도 없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