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지방선거 이후 정국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여야가 국정조사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이뤘지만 조사 범위와 특별검사 도입, 재선거 여부를 놓고 입장이 갈리면서 진상규명 방식과 수위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하고 있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전날 각각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당은 이번 주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를 보고하고 다음 주 본회의에서 의결해 특위를 조속히 가동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도 국정조사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선거 효력 문제와 출구조사 발표 경위, 투·개표 동시 진행 논란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참정권 모두를 치명적으로 훼손한 참사"라며 "민주당은 이번 주 즉각 본회의를 개최해 국정조사 계획서를 보고하고 다음 주 본회의에서 의결해 최단기간 내 특위를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한 원내대표는 "선거관리 체계의 전면적인 개혁을 위해 공직선거법과 선관위법 개정에도 곧장 착수하겠다. 국정조사와 별도로 선거제도개혁TF를 조속히 설치하겠다"며 선거관리 제도 개편 입법까지 병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민주당은 송기헌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선거제도개혁TF를 구성하고 투표용지 인쇄 기준, 현장 대응 체계, 보고 체계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국정조사와 별도로 특검 도입과 재선거 필요성을 제기하며 공세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선관위가 처음 투표용지가 부족했다고 밝힌 투표소는 서울지역 14곳에 불과했다"며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전국 67곳으로 늘어나더니 전날에는 투표용지를 추가 송부한 투표소가 무려 140곳이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결국 특검밖에 답이 없다"며 "과거 특검들처럼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자신들이 추천하는 특검에게 맡겨서는 안되고 국민의힘이 추천하는 특검에게 맡겨야 국민도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번 참정권 박탈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결국 전국 재선거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선관위 종합특별검사법'도 당론으로 발의했다. 수사 대상에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은폐 의혹, 투표함 이송 과정의 불법행위 의혹, 일부 지역 개표 숫자 동일 의혹 등이 포함됐다. 국민의힘은 특검 추천권에서 민주당을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정조사 특위 구성과 조사 범위도 쟁점이다. 민주당은 의석 비율에 따른 위원 선임을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여야 동수 구성과 국민의힘 몫 위원장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투표용지 인쇄 수량 산정 기준과 현장 조치의 적정성, 재발 방지 대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민의힘은 투·개표 동시 진행 논란, 개표 중단 거부 결정, 유권자 참정권 침해 규모, 선거 효력 문제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재선거 여부를 둘러싼 입장차도 크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면 재선거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당내에서도 신중론이 나온다. 민주당은 재선거 문제는 정치권이 임의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소청과 법원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혁신당은 실제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에 한정한 선별 재선거를 주장하고 있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자체 진상규명 절차에 들어간다. 중앙선관위는 이날 외부 인사 6명으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리고 투표용지 인쇄·배정 및 수급관리 전반, 상황 발생 이후 투표소 운영, 초동 조치와 보고체계의 적정성 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활동기간은 오는 10일부터 19일까지며 연장도 가능하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전체 1만4288개 투표소 가운데 140개 투표소에 투표용지가 추가 송부됐다. 이 가운데 91개 투표소에서 추가 송부된 투표용지가 실제 사용됐고,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지됐다가 재개한 투표소는 26곳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