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화'로 진화하는 K방산, 제 2의 도약 하려면…

서동욱 더리더 편집장
2026.09.17 11:00

[서동욱의 The 밀리터리]

'가성비'와 '빠른 납기'는 K-방산을 설명하는 확실한 수식어였다. 계약 체결 후 1년도 안 돼 폴란드에 K2 전차와 K9 자주포, 천무 다련장로켓을 실전배치하며 서방 방산업계를 놀라게 한 힘도 여기서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재래식 전력 수요가 폭증한 유럽과, 노후 무기체계 교체가 시급한 미국 모두에게 '지금 당장 받을 수 있는 검증된 무기'는 무엇보다 매력적인 카드였기 때문이다.

이제 K-방산이 다음 단계로 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완제품을 실어 보내던 수출을 넘어, 수입국 현지에서 함께 생산하고 함께 정비하는 '현지화'가 새로운 경쟁력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한 무기 판매상이 아니라 자유진영의 산업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이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되고 있다.

K9 차륜형 자주포(K9MH)가 국방과학연구소 시험장에서 주행시험을 하고있다./사진제공=한화에어로스페이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미국에서 나왔다. 지난 8월 미 육군은 노후화된 M777 견인포를 대체할 차세대 기동형 전술포(MTC) 사업의 시제품 공급업체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국 자회사 한화디펜스USA를 사실상 단독 선정했다. 독일 라인메탈, 영국 BAE시스템즈, 이스라엘 엘빗시스템즈, 미국 제너럴다이내믹스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K9 계열 차륜형 모델 'K9MH'가 낙점됐다.

약 2억3300만 달러 규모의 계약 자체보다 중요한 건 세계 최대 방산시장인 미국의 포병 산업기반에 진입했다는 상징성이다. 한화디펜스USA는 앨라배마주 오펠라이카의 유휴 공장을 임대해 K9MH 통합·시험 시설을 구축하고, 아칸소주에는 13억 달러를 투입하는 탄약 공장 건설까지 검토하며 '미국산 자주포'를 미국 땅에서 만들겠다는 진정성을 앞세웠다.

자국 생산 비중과 공급망 구축 역량을 핵심 평가 요소로 삼는 미국 조달 체계의 문법을 정확히 읽어낸 결과다. 미 육군 획득·군수·기술 차관보가 최근 한화 창원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생산라인을 살펴본 것도, 단순한 구매를 넘어 산업 파트너로서의 신뢰를 확인하려는 행보로 읽힌다.

유럽에서는 방공망을 앞세운 승부수가 펼쳐지고 있다. 지난 8일 폴란드 키엘체에서 개막한 동유럽 최대 규모의 국제방위산업전시회 'MSPO 2026'에는 40여개국 1000여개 방산기업이 몰렸고, K-방산도 총출동했다. 화두는 지상 전력이 아니라 '하늘'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드론·미사일 위협이 현실화하면서 유럽 각국이 다층방공망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 국제방산전시회(MSPO 2026)에 참가한 LIG D&A 부스/사진제공=LIG D&A

LIG 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LIG D&A)는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Ⅱ와 고고도 요격용 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L-SAM을 앞세워 폴란드 방공망 사업을 정조준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역시 L-SAM과 단거리 방공체계 H-SHORAD, 탐지·타격 겸용 대드론체계 'H-Shield' 등을 선보이며 저·중·고도 위협에 단계별로 대응하는 통합 방공 솔루션을 강조했다.

여기에 한화시스템은 지휘통제체계(C2)와 요격드론을 연계해 위협 유형에 맞춰 요격 수단을 선택 운용하는 복합무장 방식을 전면에 내세웠다. K9과 천무로 폴란드에 뿌리내린 K-방산이 이제는 방공·무인·우주AI 영역까지 보폭을 넓히며, 지상 전력 수출국을 넘어 종합 안보 솔루션 제공자로 진화하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전차 분야는 현지화가 한층 구체화됐다. 현대로템은 이번 MSPO에서 폴란드 현지 업체 '미란다'의 기동 위장막(MCS)을 처음으로 K2 전차에 장착해 공개했다. 폴란드형 K2(K2PL)에 폴란드산 임무 장비가 실제로 탑재된 모습을 대중에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현대로템은 폴란드 국영 방산그룹 PGZ 산하 부마르 와벤디와 K2PL 및 구난전차의 현지 생산·정비 협력 계약을 맺었다. 전후방 카메라와 관성항법장치 등 핵심 장비 일부를 폴란드산으로 적용하는 '폴리쉬 솔루션'을 제시했다. 완성차를 실어 보내던 단계에서 현지 공장 조립을 거쳐, 이제 현지 부품까지 얹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로템은 이 밖에도 구난전차, 교량전차 등 K2 계열 파생 차종의 현지 생산까지 논의를 확대하며 폴란드를 유럽 지상무기 생산의 거점으로 함께 키우겠다는 신호를 분명히 하고 있다.

폴란드 국제방산전시회(MSPO 2026)에 참가한 현대로템 부스/사진제공=현대로템 /사진=외부이미지

이런 흐름은 K-방산이 '가성비 좋은 수출품'에서 '함께 만드는 파트너'로 위상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완제품 수출로 매출을 올리던 1단계 도약이 가격과 납기라는 단순한 경쟁력에서 비롯됐다. 현지화를 앞세운 2단계 도약은 동맹국 산업 생태계에 녹아들어 장기적 신뢰와 지속적 후속 매출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환이 성공하려면 과제도 남아 있다. 우선 기술이전과 지식재산권 보호의 균형이다. 현지 생산이 늘수록 핵심 기술 유출 우려와 상대국의 기술 자립 요구가 동시에 커진다. 어디까지 열어줄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계약상 안전장치가 선행돼야 한다. 현지 공급망의 품질·납기 관리도 철저히 다뤄야 한다. 검증된 국내 생산 체계를 해외 협력사에 이식하는 과정에서 품질 편차가 생기면 'K-방산=신뢰'라는 브랜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와 함께 외교·안보의 판을 읽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미국에서는 자국우선주의 조달 정책과 의회의 방산기반 보호 논리를, 유럽에서는 나토 회원국 중심의 협력 구조와 역내 기업 우선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특히 폴란드처럼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국가와의 협력은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동맹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이중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무기 수출은 결국 국가 간 신뢰와 안보 이익이 맞물리는 외교의 연장선이다.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넘어 외교적 감각과 산업적 신뢰가 함께 쌓일 때 K-방산의 진정한 '제2 도약'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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