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시네마천국, "지원은 하되 간섭은 없어야"

안정숙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관장
2015.05.11 05:47
안정숙 인디스페이스 관장

영화기자로서 나는 기록하는 자의 특별한 행운을 누렸다. 검열이 엄존하던 시절, 그 압력을 뚫고 나오는 독립영화들을 봤고 훗날 코리안 뉴웨이브라고 불릴 새로운 한국영화가 개화하는 걸 목격했다. 미국영화 직배에 반대하기 위해 모인 영화인들이 표현의 자유 확보를 중심에 둔 영화법 개정운동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았다.

영화법이 개정돼 영화진흥법을 통해 '영화산업'과 예술이 지원과 격려의 대상이 되는 과정도 목도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 프랑스의 문화상이던 앙드레 말로의 말이었다던가. 예술이 통제의 대상이던 시대가 참 길었는데 이런 문화 정책이 시대정신이 됐다. 영화분야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예술이자 기술이자 산업이다. 다른 창작행위보다 좀 돈이 많이 든다. 자본의 흐름에만 맡겨두면 시대와 사회의 산소통이자 소통구가 될 창작행위가 자칫 배제될 수 있다. 이런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영역이 역할을 한다. 영화산업을 위한 제작비 풀을 만들고 마케팅 지원을 하고 영화정책을 만들어내는, 영화 전반을 지원하는 시도도 생겨났다. 이 역시 공공의 영역에서다.

하지만 우리의 지원은 아직 걸음마다. 영화관에서 영화인들과 그 영화관, 관객들이 모아주는 영화진흥기금은 국가가 영화와 영상을 지원하는 다른 나라들보다 적었다. 영화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얻어 내는 일도 어려웠다. 유럽에선 이미 60년대부터 시네마테크와 예술영화전용관을 중앙과 지방정부가 지원해 왔지만, 우리는 그들보다 30~40년 늦게야 예술영화전용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지원책도 그 만큼 늦었다.

걸음은 더뎌도, 재원은 한정돼 있어도, 우리에게는 어느 나라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산이 있다. 직배반대, 검열철폐, 영화진흥위원회 설립이란 변화를 외치기 위해 한데 모인 영화인들은 시대가 지났어도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지혜와 힘을 모으는 자리에 언제나 함께 했다. 영화계의 집단 지성이라 불러도 좋을 힘이다.

아무리 복고가 유행이라지만, 옛 노래를 부르자는 건 아니다. 영화인들이 모여 서울시의 영화정책을 묻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의 제안 중 더러는 시정에 반영된 것도 있고 각 분야 전문가들의 해를 묵힌 토론을 통과해 새로운 계획으로 탄생한 것도 있다. 이런 제안들이 묶여 이제 서울시의 영화산업 발전 종합계획이 세워졌다.

무엇보다 서울시네마테크를 조성한다는 내용이 반갑다. 시네마테크와 독립영화전용관과 미디어센터, 영화제 공간 등이 결합된 복합공간, (가칭)서울시네마테크. 누벨바그는 파리의 시네마테크에서 탄생했다는 세계 영화사의 전설처럼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유산이 전승 전파되는 고전적 공간이다.

서울은 셋집을 전전하는 민간의 시네마테크에 그 역할을 맡겨 왔다. 독립영화전용관은 어떠한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하는 다른 나라의 인디영화와 달리 우리는 권력과도 길항하는 독특한 독립 영화의 전통을 오랜 군사정권 덕택에 탄생시켰다. 그를 위한 독립된 상영공간은 한국적 특수공간이다. 미디어센터는 영상창작 교육을 통해 미래의 영상세대를 탄생시키는 시민문화공간이다. 이 새 공간에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빚어낼 화학작용이 자못 기대된다.

베를린영화제의 영포럼부문 상영장으로 독일 저부의 지원을 받는 예술 영화관, 아르제날을 질투심에 사로 잡혀 구경한 적이 있다. 그 곳 대표 울리히 그레고어는 극장부터 영사기, 칠판까지 베를린시가 장만해줬다고 자부했다. 극장의 문화적 의미가 베를린 시에 한정되지 않으므로 독일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늦게나마 서울시가 제시하는 영화지원의 여러 갈래가 다른 지방정부에게도 좋은 예시가 되기를 바란다. 문화가 숨 쉬려면 자유가 필요하다. 정책의 원칙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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