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해보자. 1년에 1억원 매출을 올리는 편의점이 있다. 어느 날 편의점에 소방점검이 나왔다. 결과는 '소방시설 불량'. 구체적으로 실내 마감재료가 불에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지적을 받고도 가만히 있자 주인에게 과태료 통지서가 날아왔다. '200원'.
당신이 편의점 주인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과연 '다음 점검 때 또 걸리면 안 되니 리모델링하자'일까. 시간과 품과 200원보다 많은 돈을 들여서 말이다. 높은 안전의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것보다는 '껌값의 반도 안 되니 과태료 내고 말지' 정도가 합리적인 반응일 것이다.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지금 서울 시내 주요 백화점들이 처한 상황이 딱 이렇다. 1년에 약 1조원대의 매출을 올리면서 소방점검으로 '소방시설 불량' 판정을 받고 고치지 않으면 대부분 200만원 과태료를 내고 끝이다. 가상의 편의점처럼 1억원 매출을 올리면서 고작 200원 내는 꼴이다. '지적사항 개선'보다는 '뭉개기'를 선택하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같은 '뭉개기'가 대형참사를 초래할 위험성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기자가 서울 현대백화점 신촌점, 롯데백화점 본점,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대해 소방 전문가와 함께 공동 소방점검을 실시한 결과 '옷가지 등 가연성 물질이 많고 사람들이 몰리는 가운데 소방시설마저 불량해 화재 시 대형참사가 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전문가는 '있으나 마나 한 처벌조항'을 지목했다.
물론 때에 따라 과태료가 아닌 벌금이나 징역 등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세기가 약하고 적용 대상이 극히 한정적이다. 일부에선 다른 형법 등과의 형평성을 들어 처벌을 강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더 엄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소방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소방시설법의 처벌조항 강화를 고민해야 할 이유다. 무엇보다 최대 200만원에 그치는 과태료 액수를 현실적으로 높여야 한다. 행정제재 등 추가 처벌조항을 넣는 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사안의 중대함을 고려하면 과태료 사안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바꾸는 것도 검토가 필요하다.
올해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주기다. 그동안 수많은 재발방지 대책이 세워졌지만 최근에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세월초 침몰사고 등 대형참사가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또 다른 대형참사가 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소' 잃기 전에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소방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조항부터 손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