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24시간 지켜볼게" 회사 감시앱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신희은 기자
2015.10.19 05:17

"앱 설치 거부했다고 출장비 미지급·징계까지"…개인정보·정보인권 침해 방지 대책 나와야

지난해 10월 KT가 직원에 지시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설치 과정에서 뜬 권한 관련 공지 화면./사진제공=진보네트워크센터.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는 박모씨(41)는 최근 스마트폰을 하나 더 샀다. 평소 전화가 걸려올 곳이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회사가 의무적으로 설치하라는 '보안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난 후부터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는 퇴사한 직원들이 중요한 영업정보를 경쟁사에 흘리는 일이 잦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지만, 박씨는 회사가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앱 설치 단계부터 너무 많은 권한을 승인해야 했던 것도 마음에 걸렸다. 박씨는 "그동안 업무와 사적인 영역 구분 없이 휴대폰을 쓰다가 이제는 카카오톡, 문자, 스마트결제, 통화는 새로 산 스마트폰으로만 한다"고 말했다.

#한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이모씨(38)는 근무시간과 외근 등을 가리지 않고 PC나 모바일을 통한 상사의 간섭이 심해 최근 이직을 고민 중이다.

오전 8시30분 근무시간부터 이씨는 PC의 사내 메신저를 의무적으로 켜야 한다. 메신저에는 '근무중', '휴식중', '식사중', '출장중' 등 여러 아이콘이 있는데 잠시 화장실을 다녀올 때도 메신저를 목적에 맞게 바꿔둬야 한다.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상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 일쑤다.

이씨는 "심지어 퇴근 후에도 부서, 팀별 카카오톡 대화창을 통해 업무를 지시하는 일이 당연시되고 여기에 응하지 않으면 '업무태만' 취급을 받는다"며 "정당한 수당도 없이 퇴근 후, 주말까지 회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기업들이 보안 강화와 업무 효율화 등을 이유로 직원들의 스마트폰에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토록 하고 PC나 모바일 메신저로 부당한 업무 부담을 지우는 등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회사의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준 사례까지 있어 개인정보 침해를 막고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KT는 지난해 10월 무선품질측정업무를 위한 앱을 직원 개인의 스마트폰에 설치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한 직원은 설치 과정에서 '이 권한이 허가된 앱은 전화번호, 휴대폰 일련번호, 통화 실행 여부, 통화 연결된 전화번호 등을 알아낼 수 있다' 등의 공지가 연이어 뜨자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해 설치를 거부했다.

회사는 지난 6월 해당 직원을 정직 1개월의 징계에 처했다. 직원은 앱 설치 지시를 거부한 결과라고 반발했지만 회사측은 '수차례 업무지시 위반 등 사규 위반'에 따른 것이라고 직접적인 관련성을 부인했다.

피죤의 경우 영업을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AR시스템(Action Recording System)' 기능을 가진 앱을 개인 스마트폰에 설치토록 했다. 앱을 설치하면 누가 어느 거래처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방문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회사는 앱 설치를 거부한 직원에게 단계적으로 출장비 등을 지급하지 않는 규정을 세워 불이익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0월 포스코도 직원들에게 보안시설 내 무단 사진촬영을 막을 목적으로 단말기원격관리 프로그램 설치를 요구했다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앱을 설치하면 직원이 주고받은 문자, 인터넷 열람기록, 통화기록 등을 들여다볼 수 있어 '감시앱'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회사는 권한을 대폭 줄인 수정 버전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보호법상 회사가 개인 스마트폰을 통해 강제로 직원의 위치정보와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본인 동의 없는 개인정보 수집은 지금도 '불법'이지만 '을'인 노동자가 '갑'인 회사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그나마 문제제기를 한 이들도 회사 내에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시민단체들은 최근 노동자의 정보인권 침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에 정보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부처를 지정하고 시정조치와 고발, 징계권고 등을 소관하도록 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 중이다. 은 의원은 "현재는 개인정보보호와 노동관계를 다른 부처에서 다루고 있는데 고용부로 책임부서를 정해 정보인권 침해 문제를 적극 해결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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