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도저히 이해도 안 되고 용서도 안 됩니다. 변호사님,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응징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루에도 3~4차례 진행되는 회의에서 의뢰인들은 격한 감정에 휩싸여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상대방에 대한 날선 공격을 요청한다.
대부분의 법률분쟁은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에 발생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계약'으로 결합된 경우다.
◇ "변호사, 영화 상영 중간에 들어간 관객가 같아"
계약은 결코 아무하고나 체결하지 않는다. 보통은 계약을 체결할 때 '과연 내가 저 사람과 계약을 해도 될까?'라는 의구심을 갖고 여러 경로를 통해 상대방을 체크한 후 신중하게 결정한다. 그리고 계약문구도 세심하게 따진다. 그렇게 신중하게 고른 사람과 결국에는 의견이 대립되고 급기야 소송에까지 이른 것이다.
3시 영화를 보러 갔는데, 차가 막혀 결국 3시40분에 영화관에 들어가게 됐다. 이미 이야기는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 주인공은 상대방에게 욕을 퍼붓고 마구 폭행을 가한다. 영화를 처음부터 감상하고 있던 다른 관객들과는 달리 영화관에 늦게 도착한 관객은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눈만 멀뚱멀뚱 뜨고서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의뢰인을 처음 만나는 변호사는 이처럼 영화 상영 중간에 영화관에 들어간 관객과 비슷한 입장에 놓인다. 의뢰인이 비난하는 상대방은 불과 얼마 전까지 같이 일을 도모하거나 서로 흉금을 털어놓는 그런 각별한 사이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 "최대한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의뢰인 말 듣는게 중요"
의뢰인을 진정시키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앞 부분의 스토리를 최대한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듣는 일이 중요하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재 자신을 지배하는 결과에 사로잡혀 그 원인의 존재를 잊어 버리곤 한다.
"처음에 그 분과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언제부터 그 분과 삐걱거리게 된 것 같은가요?"
"상대방으로부터 이상한 조짐을 느낀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볼 때, 상대방이 좀 이해되는 부분은 있으신가요? 아니면 전혀 이해가 안 되시나요?"
나는 이 과정을 '흥부가 완창'이라 부른다. 의뢰인이 무리 없이 흥부가를 완창할 수 있도록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얼쑤', '그렇지'와 같은 추임새를 넣는 일이다.
◇ "변호사, 추임새 넣는 고수가 돼야…한 차원 높은 수준의 문제해결 가능"
판소리 흥부가를 제대로 완창(完唱, 판소리 한 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일)하려면 보통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모든 사건이 3시간씩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두 시간 정도는 들어야 의뢰인과 상대방 간의 그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감정의 기복들, 다양한 역학관계들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소득은 의뢰인 스스로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세세한 이야기까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 저 친구가 이 대목에서 마음을 다친 건가?'라는 자기직면을 할 수도 있다. 의뢰인이 이러한 자기직면을 하게 되면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며, 이 때부터는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문제해결도 가능해 진다.
나는 오늘도 북과 장구를 준비해 놓고 의뢰인을 맞는다. 의뢰인이 편안한 마음으로 흥부가 완창을 할 수 있도록, 고수(鼓手)가 되어 추임새를 넣는다. 그 과정은 또 하나의 살풀이가 될 수 있다. 의뢰인의 응어리를 풀 수 있는….
'뚜벅이 변호사'·'로케터'로 유명한 조우성 변호사는 머스트노우 대표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거쳐 현재는 기업분쟁연구소(CDRI)를 운영 중이다. 베스트셀러인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의 저자이자 기업 리스크 매니지먼트 전문가다.
이 기사는 더엘(the L)에 표출된 기사로 the L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고 싶다면? ☞ 머니투데이더엘(the L) 웹페이지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