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2일 미국 백악관은 알카에다 창립자이자 9·11 테러의 배후였던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됐다고 발표했다. 9·11 테러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빈 라덴 사망까지 걸린 기간만 10년이었다.
빈 라덴 사살 작전은 치밀하고 은밀했다. '오퍼레이션 넵튠 스피어', 빈 라덴 사살 작전이라는 특명을 받은 미군은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멀지 않은 소도시 아보타바드로 이동했다.
헬리콥터에서 내린 미국 네이비실 소속 특수요원들은 3층짜리 대규모 주택으로 진입했다. 4~5m의 두꺼운 방호벽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이 고급저택이 빈 라덴의 은신처였다.
그동안 빈 라덴이 아프간 산악지역의 험한 동굴에서 지낼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 달리 그는 보통 가옥보다 8배나 큰 대규모 주택에서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저택 인근에는 육군사관학교와 육군 2사단의 사단본부 등 파키스탄의 군사 시설이 있었다.
미로 같은 내부를 뚫고 들어간 미군은 저항하는 빈 라덴 측근 세력들과 총격전을 벌였다. 40여분간 이어진 교전 끝에 한 미군의 총알이 인간방패에 가려진 빈 라덴의 머리를 관통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백악관 지하벙커에서 영상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작전 결과, 빈 라덴과 그의 아들을 포함해 총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미군 사망자는 없었다. 미군은 빈라덴 사체에 대한 DNA 검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빈 라덴의 사망을 확인했다.
이후 빈 라덴의 시신은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겨진 뒤 아라비아해 북부 해역에 수장됐다. 보통 이슬람 국가에선 사망자를 24시간 이내 염하고 매장하는데 이 풍습을 존중하는 동시에 그의 무덤이 테러리스트들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해서였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빈 라덴의 사살 장면이나 그의 시신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빈 라덴 사망과 관련해선 아직까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보를 지낸 폴 크레이그 로버츠는 빈 라덴이 이미 2001년 12월 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빈 라덴은 이미 10년 전 숨졌는데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군수업자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에 각종 언론 단체는 빈 라덴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미국 정부는 "너무 참혹해서 분노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앞서 빈 라덴은 2001년 9월 11일 4대의 민간항공기가 공중에서 납치당해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버지니아주 펜타곤(미 국방성) 건물을 파괴한 테러의 배후로 지목됐다. 이 테러에서 3000여명의 무고한 사람들과 테러범이 사망했고 전세계적으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벌어진 중동에선 훨씬 더 많은 민간인이 죽음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