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형제복지원특별법이 발의될 당시 취지에 동의했다가 번복했던 정부의 행보에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현행법으로도 관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특별법이 아니고서는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2014년 11월 열린 안행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국회 안행위 법안소위 수석전문위원은 "형제복지원에서의 인권침해 사망원인 등을 조사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제정안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당시 법안소위에 출석한 안행부 사회통합지원과장도 "진선미 의원안에 대해 정부 측에서 동의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날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철우 의원은 "이런 사건이 많이 있을 텐데 이것만 특별법으로 만들면 다른 사건도 나올 것 아니냐"며 "오늘 결정할 것이 아니라 더 공론화를 해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후 법안에 찬성하던 정부 측은 한 발 물어났다. 새누리당의 의견에 따라 공청회를 열기도 했지만, 1년 뒤인 2015년 안행위 법안소위에서 정부와 새누리당은 법안에 반대했다. 19대 국회를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지금도 정부의 입장은 다르지 않다.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행정자치부 측은 2일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법안 추진은 힘들다"고 답했다.
◇"현행 법으로 진상조사·보상 안되나?"
공청회와 국회 회의록 등을 종합하면 정부가 법안을 거부하는 이유는 크게 4가지다. '개별 사안을 법으로 만들 수는 없다' '현행 법으로 해결 가능하다' '인권위원회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현행 법으로 처리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만 현행 법으로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피해자 보상을 하기는 어렵다.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박인근 원장에 대한 형사 처벌은 더이상 불가능하다.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가 25년인데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진 것은 1987년으로 이미 공소시효를 넘겼기 때문이다.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현실적으로 힘들다. 민사상 불법행위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입증 책임이 배상을 청구하는 쪽에 있다.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 진선미 의원 측은 "어느날 갑자기 끌려간 것이 벌써 30년전 일인데 이제와서 피해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 증거 자료도 정부가 가지고 있는데 피해자들이 어떻게 확인을 하겠나. 힘들다"고 말했다.
인권위원회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피해자들은 지난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 사건으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2014년 1월 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인권침해 사실이 1년 이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진선미 의원 측은 "인권위는 현재 일어난 인권침해를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1년 이내 사건만을 대상으로 한다"며 "이미 각하된 인권위를 통해 해결하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왜 과거사위원회에서 확인하지 못했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통해 해결하지 못했느냐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안행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행정자치부차관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의거 대부분의 과거사에 대해 진상규명이 됐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는 여타 사건과 형평성을 고려하고 국민적 합의 선행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 측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014년 11월 열린 안행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수석전문위원은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이 됐다면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돼 조사가 됐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사건 피해자들이 장기간 수용 등으로 사회적 능력이 떨어지는 아동·장애인·저학력자 등이어서 이성적 사고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고, 적절한 조력자의 도움을 얻지 못해 위원회 활동기간 중에 진상규명을 신청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피해자 측 또한 "당시 경찰과 부산시공무원들에 의해 잡혀갔다. 다시 경찰, 공무원을 통해 피해를 구제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또 형제복지원에서 심신이 망가져 도움을 요청할 여력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컸고, 과거사진상위원회가 있다는 사실 조차 몰랐던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개별 사건에 대해 법을 만들 수 없다?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은 "이런 사건이 많이 있을텐데 특별법을 만들면 다른 사건도 나올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개별 사안에 대해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특별법 찬성 측은 "500여명이 감금돼 죽은 사건에 어떤 유사한 사건이 있느냐"며 "이미 세월호 특별법 등이 있는데 개별 사안이기 때문에 법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국가의 책임은 없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있지만 관계자들은 법안 통과가 어려운 이유로 정부의 책임을 전제로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형제복지원이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잡아 가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내무부 훈령이 있었다. 1975년 제정된 내부무 훈령 410호는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을 두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이에 근거에 경찰과 공무원 등에게 잡혀 형제복지원에 납치 감금됐다.
박인근 원장이 1989년 재판에서 특수감금 등 대부분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던 것도 당시 내무부 훈령에 따른 적법한 업무였다는 판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정부가 책임을 지고 진상조사와 피해보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공청회와 국회 의사록 등을 종합하면 정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정부의 책임'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 2014년 11월 열린 안행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안행부 사회통합지원과장은 "국가의 불법을 전제하고 보상을 바로 규정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진선미 의원 측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권의 이해관계에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며 "내무부 훈령이 생긴 것이 1975년으로 박정희 정권 때다.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특별법은 오는 11일 19대 국회 마지막으로 열릴 예정인 안행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재논의 될 예정이다. 법안을 발의한 진선미 의원 측은 "다시 상정해 19대 국회에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소위 자체가 불확실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최선을 다하겠지만 만약 안되더라도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행자부는 여야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법안을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행자부 사회통합지원과 관계자는 머니투데이 더엘(the L)과의 통화에서 "국회에서 논의가 더 이뤄져야 정책 방향이 나올 수 있다"며 "여야의 대립이 첨예하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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