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전 오늘...거제 포로수용소 안에서 벌어진 또다른 남북 전쟁

진경진 기자
2016.05.07 06:00

[역사속오늘]송환 심사 반대한 친공파가 수용소장 납치 감금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1951년 12월 10일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어 온 공산포로들의 모습./사진=뉴스1

6·25전쟁 휴전회담이 한창이던 1951년 당시 거제도에는 13만여명을 수용한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수용된 포로들은 북한으로의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와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로 나뉘어 치열하게 대립했다.

갈등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민간인 억류자로 분류된 이들에 대한 미군의 송환분류심사였다.

민간인 억류자들은 대부분 남한 출신으로 인민군에 복무하다 붙잡힌 이들이었다. 미군은 그들에게 송환분류심사를 통해 원하는 곳으로의 망명을 허가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친공계 포로들은 '포로는 전쟁행위 종료 뒤 지체없이 석방돼 본국으로 송환돼야 한다'는 포로대우에 관한 제네바협정 제118조를 거론하며 미군의 송환분류 심사는 명백한 위반이라고 맞섰다.

이를 둘러싸고 수용소 내에선 크고 작은 폭동들이 일어났고 결국 1952년 5월7일 사건이 발생했다. 포로들의 피복과 식량 배급 등에 대한 면담을 하던 포로수용소 소장 도프란시스 도드 준장이 납치된 것이다.

포로들은 경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도드 준장을 수용소 안으로 끌고 들어가 포로들의 포로로 만들었다. 도드 준장을 납치한 이들은 친공 포로들이었다.

이들은 미군의 포로 학대사실 인정, 강제송환 심사 중단, 포로 대표단 인정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간인 억류자들에게 송환에 대한 자유 의사를 물을 경우 북한과 중공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포로들이 매우 적은 인원일 것임을 예측하고 이를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신임 사령관으로 부임한 찰스 콜슨 준장은 "많은 포로가 유엔군에 의해 살상된 사례가 있음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송환분류심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후 송환심사는 중단됐지만 포로들 간 대립의 수위는 높아졌다. 결국 유엔군은 사건이 발생한 지 한달만인 6월10일 무력으로 사태를 진압했고 도드 준장도 무사히 구출했다. 사태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반공 포로와 친공 포로의 분산 수용도 결정했다.

거제 포로수용소는 휴전과 함께 폐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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