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년 전 오늘…조선귀족, '공식' 친일파의 등장

이미영 기자
2016.10.07 06:00

[역사 속 오늘] 한일병합 직후 화족이 종친, 훈공 등 기준에 따라 귀족신분 차등 부여

조선귀족회관/사진=위키피디아

귀족과 백작. 왠지 중세시대의 느낌이 물씬 난다. 사기꾼 백작과 귀족 상속녀가 나오는 영화 '아가씨'가 그렇다. 으리으리한 저택은 유럽 중세시대를 연상케하며 이들의 호칭이나 설정은 왠지 동양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영화에서처럼 신분제가 실제로 우리나라에 존재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아가씨에 나오는 사기꾼 백작이 활동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귀족이란 지위를 얻기 위해선 '나라를 팔아먹을 만한' 공(?)을 세워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106년 전 오늘(1910년 10월7일)은 조선에 '귀족'이라는 신분제도가 생긴 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토종' 귀족은 아니었다. 귀족신분을 부여한 주체가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과 일본이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 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화족제도가 우리나라에도 적용됐다.

일본에서 화족은 메이지유신 이후 사농공상의 신분제도를 개편하면서 새로 만든 계급이다. 화족은 총 5계급으로 나뉘어 있으며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총 5계급으로 나뉘었다.

한일병합이 된 그 해 8월. 대한제국에는 '조선 귀족령'이 공포된다. 일본 정부는 대한제국 황족이 아닌 종친, 문지(門地), 훈공이라는 기준에 따라 선정된 고위급 인물들을 후작, 백작, 자작, 남작에 봉작했다.

당시 귀족 신분을 얻은 조선인은 총 76명. 후작 6명, 백장 3명, 자작 22명, 남작 45명이었다. 한일병합의 일등 공신이었던 이완용도 이때 백작 지위를 받는다. 개화파이자 갑신정변의 주도자였던 박영효는 고종의 친척 매제로 황실 가족으로 인정돼 후작의 지위를 받았다.

물론 이들 중 일본이 준 귀족 신분을 반납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 8명. 김석진, 윤용구, 홍순형, 한규설, 민영달, 조경호, 조정구, 유길준 등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귀족 지위를 수락했다.

약 2달 뒤인 10월7일 열린 수작영식에서 이들을 제외한 68명은 귀족 신분을 부여받고 일본이 제공하는 특혜를 받았다. 박영효는 이듬해 조선귀족회까지 만들어 각종 특혜와 특권을 누리는 이익집단으로 발전시켰다.

조선 귀족이 누리는 혜택은 다양했다. 이들의 자제는 시험을 보지 않고 경성유치원과 가쿠슈인(학습원)에 입학할 수 있었고, 도쿄제국대학이나 교토제국대학에 결원이 생기면 시험없이 입학할 수 있었다. 이들의 지위는 후대에 세습할 수 있었다.

경제적인 혜택이 가장 컸다. 부여된 신분에 따라 일종의 증권형태인 은사공채도 지급됐다. 원금은 5년 거치 50년 상환 조건이며, 연 5%의 이자도 별도로 지급해줬다.

박영효. /사진=위키피디아

조선귀족에는 일본의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들어가 있다. 돈과 특혜로 무능력한 조선 지배층을 포섭해 일본의 조력자로 전락하게끔 한 것이다. 조선귀족은 적당히 일본의 통치를 눈감아 주고 사치스럽고 안락한 생활을 선택했다. 각종 통치기구나 사회단체, 수탈기구에 참여하거나 식민통치를 옹호하는 글을 쓰는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일본의 의도는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무능력했던 귀족들은 경제적 혜택에도 불구하고 다시 궁핍해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계층에서 지식인들이 나타나면서 조선 지배층의 영향력도 점점 약화됐다.

일부 귀족의 이탈도 있었다. 김가진은 1919년 의친왕을 상해로 탈출시키려는 대동단 사건에 가담했고 이듬해 상해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다. 이용직과 김윤식은 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과 일본정부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해 실형을 선고받고 신분을 박탈당했다.

귀족 지위를 이어받은 윤치호는 105인 사건에 연루돼 역시 귀족 지위를 잃었다. 민영린, 김병익 등은 마약, 도박 등 범죄와 연루돼 귀족 신분을 반납하기도 했다

조선귀족의 호위호식은 1945년 대한제국이 광복을 맞이하면서 끝나게 된다. 그들이 일제 치하에 특혜를 누리게 해준 지위는 '전과'로 전락했다. 귀족 지위를 받은 이들을 '친일파'로 규정할 수 있는 명백한 기준이 생긴 것이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제정된 '반민족행위 처벌법'은 조선귀족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다. 2004년 제정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귀족지위를 부여받았거나 세습한 사람을 친일행위로 규정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41명의 귀족 중 귀족 지위를 반납하거나 민족운동에 참여한 인물을 제외한 137명을 친일 인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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