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무너진 대한민국을 부활시켜라."
6·25 전쟁 막바지 무렵, 휴전을 앞두고 남한에선 국산 항공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만의 기술로 비행기를 만들면 오랜 전쟁으로 땅에 떨어진 국민의 사기도 충전되고 '자주국방의 힘'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결국 공군기술학교 주관으로 김해 사천 공군기지에서 경비행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설계부터 제작까지 모두 순수 국내 기술로만 이뤄진 작업이었다.
그 결과 △몸체 길이 6.6m △날개 길이 12.7m △높이 3.05m △최대 85마력 △자체 무게 380㎏ △4기통 엔진 △최대 시속 180㎞ △순항 시속 145㎞ △탑승 인원 2명의 경비행기가 완성됐다.
완성된 지 하루만인 1953년 10월 11일 실시된 첫 시험 비행은 성공적이었다. 순수 우리 기술로 제작된 최초의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다음해 4월 3일 열린 명명식에서 전쟁으로 무너진 나라를 되살리겠다는 의미로 이 경비행기에 '부활'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친필 휘호를 내렸다.
하지만 전쟁 직후 미약한 산업기반과 여러가지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리면서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된 경비행기는 '부활호' 단 한 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부활호'는 공군의 연락·초등 훈련 임무용으로만 사용되다 1960년 대구에 있던 한국항공초급대학에 제작 실습용으로 기증됐다.
6년 후 한국항공초대가 폐교되면서 부활호 역시 기억에서 잊혀졌다. 시간이 흘러 2004년 1월 경상공고(옛 한국항공대) 지하창고에서 발견된 부활호는 뼈대만 남아있었다. 날개나 엔진 등 주요 부품은 모두 사라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반쯤 벗겨진 채로 남아 있어 '부활호'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군은 부활호 동체의 경우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판단, 날개와 착륙장치 등만 다시 제작하기로 했고 그 해 10월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복원이 완성됐다. 복원된 부활호는 현재 충북 청주시 공군사관학교에 보관돼 있고 사천 항공우주박물관에는 모형이 전시됐다. 2008년에는 등록문화재 411호로 지정됐다.
이 이야기는 2011년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으로도 제작됐다.